서브메뉴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 갤러리
  • 자료실

본문내용


제목
  오늘
글쓴이   청지기 날짜    2011-11-15  (조회 : 1898)
[곧 지혜가 네 마음으로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악마의 기만과 폭력인 어둠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모든 삶은 어둠에 시달리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어둠을 가진 사람과는 더불어 살수 없게 된다. 그들과 함께 하면 아주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된다. 반면에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인 밝은 빛이 들어간다면 그 사람의 모든 삶은 밝고 화창한 삶을 영위하게 된다. 그 사람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밝고 화창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힘에 의해 즐거움과 행복을 얻게 된다. 사람은 그 속에 가득한 것으로 인해 자타의 행불행이 결정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가 들어가면 그 사람은 만물을 살리는 빛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모든 인류를 살리는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악마적인 흑암의 세계에서 살수 없다. 그런 연고로 늘 하나님의 빛을 지향하고 있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이 있는 줄 모를 때는 인간의 힘으로 그 빛을 만들어서라도 살려고 노력한다.

악마의 어둠은 기만과 폭력으로 달성하는 인간에 대한 증오와 착취이다. 이런 증오와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어둠은 상상할 수 없는 혼돈의 언어들로 가득하게 한다. 한반도는 그런 기만적인 언어와 폭력적인 언어 집단에게 시달리고 있다. 저들이 권세를 얻어 북한주민의 신음을 만들어 내고 탄식의 눈물에 침몰하게 한다. 흑암이 짙어 질수록 혼돈의 언어들은 북한주민을 더욱 깊은 압제로 몰고 간다. 거기서 북한주민들은 더욱 큰 신음과 탄식으로 엄몰되고 있다. 북한주민은 지금 그 심각한 어둠과 혼돈함과 눈물에서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 구원은 아주 절실하다. 그것이 곧 사람의 속에 어둠이 들어갔을 때의 전개되는 내용이다. 이런 것은 인간 창조의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고유 본능적이다. 태초의 흙은 혼돈하고 물에 빠져 있어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하셨다. 흑암 속에 갇힌 흙은 모든 것이 혼돈 그 자체에 빠져 있었다. 혼돈이 치료된 흙이 되려면 흑암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흑암을 극복하게 하는 힘은 하나님의 빛이다.

하나님이 빛을 만드셔서 비로소 흙을 흑암에서 벗어나게 해야 하셨다. 빛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 진다. 비로소 빛은 있게 된다. 빛이 나오자 결국 흙이 비로소 치료된다. 그것이 흙이 가진 질곡이고 치유스토리이다. 흙은 빛을 가져야 비로소 그 혼돈에서 벗어나게 된다. 빛을 머금은 흙이 될 때 비로소 물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얻게 된다. 흙은 어둠 속에 묶이게 되면 혼돈함에 짓이겨진다. 혼돈함에 짓이겨지면 탄식의 고통으로 눈물에 빠져 버린다. 흑암 속에 갇힌 흙은 하나님의 지혜의 개념이 없다. 진리의 모든 것을 알아 볼 수 없다. 인식되는 것은 혼돈함 뿐이다.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의 개념이 없는 흑암이 가져온 혼돈은 그들 위에 잔혹한 압제자의 주구가 되어 군림한다. 이에 흙은 처절하게 시달리게 된다. 흙은 흑암으로 인해 시달리게 되고 그렇게 운다. 울어도, 울어도 탄식해도 벗어날 길은 없다. 절망 그 자체가 흙을 시달리게 한다. 아무도 그 눈물에 잠겨 신음하는 흙을 건져낼 자가 없다. 그때 스스로 계신 하나님은 빛을 만들어 흙에게 소망을 주신다.

그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이 흙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눈물을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빛은 깊은 절망에 빠진 흙에게 확신에 찬 희망을 준다. 그 빛은 흙속으로 들어간다. 들어 가서 그에게 ‘곧 지혜가 네 마음으로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 라는 말씀을 이루게 한다. 빛을 갈급하게 받아들이는 눈물은 혼돈에게서 벗어나는 흙에게서 비로소 물러가기 시작한다. 흙은 그제 서야 구원된다. 흙은 비로소 거기에 뿌려진 모든 씨들에게 생명을 주기 시작한다. 그 품에 자라나는 수많은 생명체를 안아 기른다.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번성하게 하고 수많은 생명체의 어미가 된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으로 인해 깊은 탄식과 신음의 눈물에서 벗어난 대지의 꿈은 그렇게 이뤄지게 된다. 참으로 흙은 하나님의 빛의 도움을 입어 악마의 흑암에서의 자유와 혼돈함에서의 자유와 깊은 눈물과 신음에서의 자유를 찾아 낸 것이다. 그런 흑암에서 벗어난 흙이 비로소 참혹한 고통의 눈물에서 구원된다. 참혹한 눈물에서 구원된 흙은 하나님의 손길에 선택되어 인간의 육체가 된다.

그 흙은 지혜와 사랑의 빛을 공급하는 자의 손에 의해 인간의 혼이 된다. 그런 연유로 인해 흙으로 빚어진 인간의 육체와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빛으로 가득차야 한다는 원칙이 되었다. 때문에 인간은 그 원칙을 따라야 한다. 때문에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이 있어야 한다. 물질계의 빛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빛이 필요하다. 모든 만물과 더불어 살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빛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빛은 하나님의 지혜이고 빛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때문에 하나님에게 공급받아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인간은 행복해진다. 즐거워진다. 희락과 희열에 잠겨 모든 만물과 더불어 살며 이웃을 이타적인 사랑으로 사랑하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로만이 악마의 미움과 지혜인 어둠에서 벗어나게 된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만이 이 어둠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인 하나님의 빛으로 인해 인간은 비로소 행복을 가질 수가 있다. 어둠이란 악마의 기만이고 악마의 폭력이다.

기만과 폭력은 하나님의 빛이 없는 인간 속에서 온갖 혼돈을 일으키고 거기에 흑암이라고 하는 미련함의 극치 속에 빠지게 한다. 인간이 그런 미련에 노예가 되면 그때부터 눈물이 마를 날이 없게 된다. 그런 눈물에 빠지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절망으로 파괴된 인생을 살게 된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고 어둠에 지배받게 하는 것은 혼돈이다. 그런 것의 결과는 심각한 눈물이다. 북한의 세상에 김정일의 어둠이 짙게 내리 누르고 있다. 거기에 각양 혼돈된 언어들이 북한주민위에 군림한다. 그런 속에서 짓이겨지는 북한주민의 삶에는 온갖 탄식과 아픔과 신음과 고통과 울부짖음이 가득하다. 북한주민의 흐르는 눈물에 잠겨 고통 받고 있다. 거기에 구원의 빛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저들이 날이 갈수록 핵무장을 하고 더욱 떼 법으로 남한사회를 혼란케 하고 있다. 빛이 있어야 한다. 전능자의 구원의 시작을 알리는 빛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빛을 마음에 담아 그곳에 빛을 전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지혜의 빛을 마음에 담아 그곳에 빛을 뿌려줄 자들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이 사랑의 빛을 북한 온 누리에 뿌려주어야 한다. 흑암의 혼돈의 언어에서 벗어나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의 빛의 언어들이 가득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의 빛의 언어들로 혼돈된 언어들을 모조리 쓸어버려야 한다. 그런 것으로 인해 북한주민은 비로소 행복은 언어의 속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둠의 언어는 혼돈만이 가득하고 그 혼돈 속에서는 눈물이 바다같이 자기들의 삶을 침몰 시킨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빛의 언어는 모든 혼돈을 바로잡고 마침내 신음과 탄식과 절망의 눈물에서 건져내 주고 온 땅으로 풍요를 더불어 나누는 세상을 연다는 것을 알게 한다.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행복한 세상을 여는 것이 곧 빛의 언어 사랑의 언어 지혜의 언어임을 알게 된다. 착취를 정당화하기 위해 만든 모든 혼돈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빛이 필요하다. 눈이 있는 자들은 보라. 귀가 있는 자는 들어보라. 입이 있는 자는 말해보라. 북한주민이 당하는 고통을 외면하는 자들아 눈에 빛이 있다면 이를 확인해 보라. 눈과 귀에 빛이 없다면 어둠의 자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