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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복의 6자회담 고찰
글쓴이   청지기 날짜    2011-11-15  (조회 : 1977)
북괴가 깔아 놓을 6개의 지뢰밭...
1. ‘선 경수로 제공’ 2. ‘포기’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내용을 어떻게 ‘특정’ 3.‘비핵화’와 ‘비핵지대화’ 4. IAEA의 ‘사찰’을 거부. 5. ‘평화협정’의 문제다. 6.‘핵보유국’으로 인정.

북한이 베이징 ‘6자회담’에 복귀한다고 한다. 중국의 주선으로 10월31일 베이징에서 이루어진 7시간 동안의 미ㆍ중ㆍ북 3자 회동에서 이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이다. 평양과 워싱턴에서 이를 확인하는 발표가 있었다. 두 곳에서의 발표 내용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북한의 발표는 “6자회담에서 금융제재 문제를 논의·해결한다는 전제 아래 회담에 복귀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미국의 발표는 “북한은 아무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는 것”이며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도 불구하고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에 의거한 대북 제재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이 양쪽의 발표를 보면 이번의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이끌어낸 미끼는 역시 미국 재무부가 취한 대북 금융제재 조치로 마카오 소재 BDA 은행의 북한계좌에 동결된 2천4백만 달러의 처리에 관해 무언가 돌파구가 마련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이에 관하여 미국의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차관보의 ‘말’에는 행간에서 읽히는 것이 있다. 그는 “(6자회담이 열리면)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다루게 되겠지만 (그것은 별도의) 실무그룹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밝힌 뒤 “평양당국은 달러화 위조를 포함한 ‘불법행위’를 포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결국 그의 ‘말’은 이번 베이징 3자회동과 그 테두리 안에서 있었던 그와 북한 외교부상 김계관 사이의 1대1 대좌에서 북한으로 하여금 2천4백만 달러 전액은 아니더라도 아직 미상의 액수에 대해서는 동결이 해제될 것이라고 믿게 만들 수 있는 내용의 대화가 교환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를 근거로 지금 언론에서는 문제의 2천4백만 달러 중 미 재무부의 그 동안의 조사를 통해 위조지폐나 마약매매 대금 등 불법성이 인정되지 않는 금액에 대해서는 6자회담 속개와 전후하여 동결이 해제되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존스 홉킨스 대학의 돈 오버도퍼 교수는 그 액수를 8백만 달러 정도로 예측했다는 기사가 보도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의 전개는 한 가지 사실을 명백히 해 준다. 즉 북한이 만장일치로 이루어진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 1718호를 얻어맞으면서까지 강행한 10월9일의 핵실험의 목적이 결국 BDA에서 묶여 있는 2천4백만 달러의 전액도 아닌 일부를 건져내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당연히 두 가지의 추리를 가능하게 한다. 첫째로는 BDA에 묶여 있는 2천4백만 달러가 액수와는 상관없이 무언가 ‘신성불가침’ 성격의 특수한 돈이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서 머리를 드는 추리가 이 돈은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의 개인적 ‘비자금’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둘째로는 어쩌면 지금 북한의 외환 사정이 기를 써서라도 이 돈을, 전액이 아닌 일부일지라도, 반드시 건져내야 할 만큼 급박한 것이 아니냐는 추리이다.

지금 흘러나오는 ‘말’들을 종합해 보면 북한은 6자회담이 속개되면 그 틀 속에서 미국과 ‘금융제재 실무소위’ 같은 것을 만들어 그 안에서 과거에 있었던 달러 위조와 마약 밀매 자금 등의 돈 세탁 행위 및 유포 사실에 대해 포괄적으로 인정ㆍ사과하고 향후 그 같은 불법행위의 재발을 방지하는 장치에 합의하는 것을 대가로 하여 BDA 은행에 묶인 자금 전액의 동결 해제뿐 아니라 북한에 대해 미국이 취한 금융제재 조치의 전반적 해제를 요구할 가능성이 시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다른 것 같다. 미국은 6자회담의 속개를 위하여 대북 금융제재의 부분적이고 상징적 해제는 고려하겠지만 전반적 해제는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의 이행으로 통합함으로써 핵문제에 관하여 북한이 취할 일정한 조치와 연동시켜 교환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예컨대, 영변의 5 메가와트 흑연감속로와 재처리시설의 해체와 일정한 대상에 대한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수용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작년 9월부터 조심스럽게 에스컬레이트시켜 온 대북 금융제재에 대한 북한의 대응을 통해 북한의 취약성을 간파했고 그 결과로, 상황관리를 잘 하기만 한다면, 기본적으로 대북제재를 통해 북한의 양보 내지 굴복을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는 것이다.

북한은 무엇 때문에 그 동안의 비타협적 입장을 접고 6자회담 복귀로 방향을 전환했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의 추리가 가능할 것 같다.

첫째로는 더 이상의 ‘벼랑 끝’(brinkmanship) 외교로 미국을 꺾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10월9일의 핵실험은 더구나 중국의 진노(震怒)를 자극하여 안보리 결의 1718호의 만장일치 채택을 가져 왔다. 표면적 허장성세(虛張聲勢)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근력을 상실한 것이다.

둘째로는 중국의 압력이었다. 지금 중국에게 중요한 것은 북핵 문제 해결보다도 6자회담의 지속이다. 중국은 한편으로는 미국ㆍ일본과 함께 안보리 결의 1718호 채택을 주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안보리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부분적으로 행동에 옮기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대북 원유공급 중단과 심지어 조중(朝中) 우호조약의 개정 문제까지 거론하는 등의 압력을 총동원하여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강요하는 대북 압박 외교를 전개했다. 북한은 꺾이지 않을 수 없었다.

셋째로는 6자회담의 틀 속에서 한미관계를 더욱 이간할 수 있다는 북한 나름의 계산이 있다. 김정일의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함으로써 남쪽의 노무현 정권으로 하여금 10월9일의 핵실험 이후 부분적으로 동결되었거나 위축되었던 대북 경협을 재개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이 핵 포기를 구체화할 때까지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유지하려 하는 미국과 한국 사이에 갈등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북한의 계산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갈등을 이용하여 남한사회의 친북화와 반미화를 더욱 조장ㆍ선동함으로써 내년 대선 정국에서 좌파세력의 정권 재창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려 하는 것이다.

이 같은 북한의 의도로 미루어 볼 때 6자회담은 속개되더라도 현안인 북한 핵문제의 해결에는 쉽사리 돌파구가 마련될 전망이 없다. 6자회담이 속개되고 다행히 대북 금융제재 처리 문제를 6자회담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6자회담의 전도는 암담하다. 왜냐 하면 북한이 6자회담의 전도에 최소한 6중(重)의 난공불락의 ‘지뢰밭’을 매설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의 ‘지뢰밭’은 이미 노출되어 있다. 북한이 요구하는 ‘선 경수로 제공’ 요구다. 6자회담이 속개되고 핵문제에 대한 토의가 시작되면 회담은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씨름을 계속해야 한다. 이 문제에 관한 북한의 요구는 사실은 작년 4차 회담에서 채택된 ‘9.19 공동성명’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부당한 것이다. ‘공동성명’은 6개 항목으로 되어 있지만 그 핵심은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조속한 시일 안에 NPT(핵확산금지조약)과 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하겠다”는 북한의 ‘약속’과 “북한이 주장하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권을 존중”하고 “적절한 시일 안에 북한의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하겠다”는 다른 회담 참가국들의 ‘약속’이다. 여기서 문면 상으로 중요한 사실은 북한의 ‘약속’과 다른 참가국들의 ‘약속’ 사이의 시제(時制) 상의 선후관계다. 분명히 “조속한 시일”로 표현된 북한의 ‘약속’이 “적절한 시일”로 표시된 다른 참가국들의 ‘약속’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 같은 문면 상의 선후관계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1994년10월21일의 ‘제네바 합의’ 때와는 달리 지금은 경수로에서도 흑연감속로나 마찬가지로 ‘무기급’ 플루토늄(Pu238의 함량이 93% 이상인 플루토늄)이 양산될 수 있다는 것이 공지의 사실이 되어 있다. 이 때문에 흑연감속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의 ‘핵확산금지 체제’ 하에서는, 세계의 어느 나라이건 경수로를 가지려면 우선 “NPT에 가입하고 IAEA의 안전조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 요건이다. 이 때문에 북한이 경수로를, 물론 흑연감속로도 마찬가지지만, 가지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이 탈퇴한 NPT와 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뿐 아니라 행동으로 신뢰성을 입증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북한의 주장은 그 같은 필요조건을 충족시킴이 없이 경수로를 먼저 달라는 것임으로 국제사회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이 ‘선 경수로 제공’ 요구를 철회하지 않는 한 6자회담은 한 걸음도 진전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북한이 이 요구를 철회한다고 해서 6자회담의 전도(前途)에 서광(曙光)이 비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이 깔아놓은 두 번째 ‘지뢰밭’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북한이 ‘포기’하기로 한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내용을 어떻게 ‘특정’하느냐는 문제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북한이 플루토늄 외로도 ‘고농축 우라늄’(HEU)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시인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이미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의 아버지’인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증언’이 나와 있다. 즉, 파키스탄 정부가 수사를 통해 밝혀 낸 사실에 의하면 칸 박사는 아시아·아프리카·유럽의 여러 지역에 '핵기술 암거래 시장'을 형성하고 이란과 리비아, 그리고 북한 등에 우라늄 원자탄 설계 기술과 함께 말레이지어 등 제3국을 제작 기지로 활용하는 우회적 방법으로 우라늄 ‘고농축’용 설비(원심분리기)를 비밀리에 공급해 온 사실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을 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북한이 이를 계속 부인하는 한 6자회담에서 북한이 ‘포기’해야 할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의 ‘내용’을 ‘특정’하는 일은 해결 불가능한 난제가 아닐 수 없고 회담은 진전이 불가능하다.

가령, 이 문제가 어찌어찌 해결되면 그 다음에 전개될 상황은 무엇인가? 북한이 깔아놓은 세 번째의 ‘지뢰밭’이 기다리고 있다. ‘비핵화’와 ‘비핵지대화’ 논쟁이다. 북한은 입으로는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북한이 ‘말’로는 ‘비핵화’라고 하면서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그와는 정반대의 개념인 ‘비핵지대화’다. ‘비핵화’는 ‘핵 비보유국’의 “핵보유를 불허”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핵지대화’는 ‘특정 지역’을 지정하여 ‘핵보유국’들에 의한 “핵 반입이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다. 6자회담의 취지는 “핵 비보유국인 북한의 핵보유를 불허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주장하는 것은 6자회담에서 북한의 핵을 논의하기에 앞서 “북한으로 하여금 핵 개발을 하도록 유도하는 미국의 핵”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서는 “강에서 놀아야 할 배가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경우”가 된다. 6자회담의 진행이 불가능해 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가 해결될 경우 다음에 등장할 네 번째의 ‘지뢰밭’이 있다. 그것은 ‘사찰’의 문제다. 북한은 북한의 대상에 대한 IAEA의 ‘사찰’을 거부한다. IAEA가 “미국의 주구(走狗)가 되어서 공정성을 잃고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그 대신 북한은 공정한 ‘제3의 사찰기구’ 구성을 요구한다. 현존 국제 핵확산금지 체제 하에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요구이다. 뿐만 아니라, ‘사찰’ 실시에 합의가 이루어지더라도 그 ‘대상’을 어떻게 ‘특정’할 것인가는 난제 중의 난제가 될 것이 틀림없다. ‘존엄한 주권 침해’를 이유로 북한 소재 ‘사찰 대상’ 선정에 많은 난관을 조성할뿐더러 미국의 ‘핵’을 상대로 엉뚱한 ‘사찰’을 요구할 것이 틀림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다섯 번째의 ‘지뢰밭’이 있다. 소위 ‘평화협정’의 문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적대관계의 청산”이다. 이 요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아직 분명히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그 내용과 관련하여 참고할 자료가 있다. 그것은 1994년 북한이 미국에게 요구했던 소위 ‘조선반도 평화보장 체제’다. 이때 북한이 말한 ‘평화보장 체제’는 미국과 북한이, 한국은 배제된 가운데, 1953년의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체결하되 주한미군 철수, 한미 상호방위조약 폐기, 한미 연합사령부 해체 및 ‘작전계획 5027’ 폐지와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지 등을 그 내용으로 담자는 것이었다. 요컨대 ‘한미동맹’의 파기였다.

북한은 이때 “만약 미국이 당장 ‘평화보장 체제’를 수용하기 어려우면 우선 과도조치로 ‘평화보장 조치’에 합의하자”는 제의도 내놓았다. 북한이 말하는 ‘평화보장 조치’란 당장은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데까지는 가지 않되 “군사정전위원회는 해체하고 그 대신 주한미군과 북한군 대표로 구성되는 ‘판문점 군사대표부’를 각기 설치하여 두 대표부 간의 회의를 통해 정전협정 중의 필요한 조항만을 이행하면서 공동경비구역과 비무장지대를 관리하자”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마지막 ‘지뢰밭’이 있다. 그것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다. 북한은 2003년부터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한 집요한 노력을 전개해 왔다. 2003년 북한의 “핵억지력 확보” 주장에 대해 국제사회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북한은 2004년1월 미국의 저명한 핵물리학자와 상원 외교위 전문위원들을 영변으로 불러다가 소위 ‘핵억지력’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때 이들에게 “이것이 우리의 핵억지력”이라면서 북한이 보여준 것은 “유리병에 든 흰 색 분말”이었다. ‘플루토늄’이라는 것이었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반신반의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은 2005년2월1일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수를 증가시키고 있다”고 선언했다. 국제사회는 여전히 반신반의였다. 북한이 드디어 핵실험이라는 ‘금단(禁斷)의 사과’를 땄다. 2006년10월9일 북한은 “성공적으로 안전하게 핵실험을 실시했다”고 발표했다. 핵실험이 성공적이었다면 북한은 이제 다툼의 여지가 없는 아홉 번째의 ‘핵보유국’이 되는 순간이었다. 과거 항상 그랬던 것처럼 이번의 핵실험도 어딘가 모자라는 것이었다. 폭발력이 0.5-0.8kt에 불과해 “폭탄이 맞느냐, 아니냐”의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만약, 북한의 핵실험이 정말로 핵폭탄 폭발시험이었고 이를 근거로 북한이 ‘핵보유국’ 인정 요구를 공식으로 제기한다면 6자회담은 그것으로 종을 쳐야 한다. 지금 세계에는 8개의 ‘핵보유국’이 있다. 그 가운데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는 공인된 ‘핵보유국’이고 인도와 파키스탄은 ‘준’공인된 ‘핵보유국’이며 이스라엘은 ‘핵보유국’으로 사실상 간주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가 공인될 경우, 북한의 핵문제는 다른 8개의 ‘핵보유국’의 핵문제와 함께 ‘핵 군축협상’의 차원에서 다자(多者)의 틀 안에서 다루어야 하지 북한만을 분리시켜 핵 포기를 요구하는 것은 형평성과 공정성의 차원에서 부당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렇게 되면 북한은 다른 8개의 ‘핵보유국’처럼 ‘다자적 핵 군축협상’의 유장한 프로세스에 안주하면서 무기한 핵을 보유하고 증강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동안 북한의 행보는 6자회담 전략의 틀 속에서 문제의 ‘핵보유국’ 인정 요구와 이를 뒷밭임하기 위한 핵실험은 맨 마지막 ‘지뢰밭’을 형성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북한은 그에 선행해야 할 5단계의 ‘지뢰밭’들은 제켜두고 마지막 카드를 뽑아들었다. 그 이유는, 추측컨대, 작년 9월부터 미국이 실시한 대북 금융제재가 북한의 입장에서 너무나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공갈 효과를 극대화시킬 목적으로 핵실험을 단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사실은 이번의 핵실험은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게는 분명히 ‘자살(自殺) 골’이었다. 미국이 겁을 먹지도 않았고 중국 지도부의 분노를 샀으며 결국 핵실험 실시로부터 불과 1주일 안에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 1718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하는 상황을 초래했다. 이제 6자회담이 열리면 북한은 ‘갑’의 입장에 서지 못하고 ‘을’의 위치를 감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만약 6자회담에서 단시일 안에 북한이 핵포기 쪽으로 방향을 틀지 않고 복잡한 회담전략으로 시간을 천연시킬 때는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선택’에 중대한 방향전환이 생길 가능성이 예고되고 있다. 결국 미ㆍ중간에는 북한의 핵포기를 강요하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도출되고 그 같은 결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전략적 대화’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습게 되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이미 이번 6자회담 속개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한국의 소외(疎外)는 현저하게 부각되었다. 이미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는 더 이상 공조의 리듬이 살아 있어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노무현 대통령이 단행한 외교ㆍ안보 부처 책임자에 대한 ‘오기(傲氣)’ 인사는 회복불능의 악수(惡手)가 아닐 수 없을 듯 하다. 이번의 인사는 노무현 정권이 앞으로 북한의 핵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른바 ‘대북포용’이라는 이름 아래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옹호ㆍ비호하고 미국을 견제하는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일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열린 ‘외국인 투자유치 보고회’ 자리에서 “한국군, 한국 국민의 역량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을 유지해 나갈 것이고, 아울러 굳건한 한미동맹의 토대와 역량으로, 나아가서 국제사회의 역량으로 이 군사적 균형이 파괴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 대통령의 ‘말’은 이 역시 그의 장기(長技)인 ‘말장난’일 뿐이지 실체가 없다. 더구나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군사력 균형이 깨지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이 누구를 납득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가 말하는 ‘한미동맹’과 미국이 생각하는 ‘한미동맹’ 사이에는 이제 접점(接點)이 없어지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