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연설’ 과 ‘이적행위론’
이름 : 김정열
- 대북정책이 본질보다 정쟁으로 흐름을 경계한다
너무나 큰 대북송금특검법안에 대한 시각차
헌정사에 이름이 긴 법안의 하나로 기억될 58자의 ‘남북정상회담관련 대북비밀송금의혹사건 및 관련 비자금 비리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에 관한 법률안에 대한 수정안’(이하 대북송금특검법안)이 15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 법안은 한나라당이 이미 특검활동의 기한이 끝난 기존 법안에 최근 밝혀진 98년 4월 이후 북한의 핵개발 고폭실험에 대한 내용 등을 추가한 대북송금 조사관련 슈퍼특검법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한 여야의 입장차이를 보면 비교의 차원을 넘어서 매우 안타깝다. 이날 법안 통과 후의 하이라이트는 민주당 추미애 의원(광진을, 2선)의 눈물의 연설이었다. 추의원은 이날 “많은 인내를 하며 걱정이 앞서는 날” 이라고 반대토론을 시작하며 “햇볕정책은 여러 분의 반대에도 계속 추진되었지만, 그 결과 긴장완화와 위기극복의 혜택은 바로 여러분들이 고스란히 누렸다” 고 법안을 통과시킨 한나라당 의원석을 향해 외치듯이 연설했다.
이어 추의원은 감정에 복받친 듯 분단 고착 후 정권교체를 이루었다고 김대중 대통령을 두둔하는 대목에서 눈물을 훔쳐낸 뒤 노대통령에게 말한다며 “특검법은 반드시 거부해야 한다” 고 촉구하였다. 나는 평소 여성의원으로서 당당하게 소신을 숨기지 않는 추의원을 매우 존경한다. 그래서 어느 신문에선가는 ‘추미애 의원이 옳다’ 는 칼럼 제목까지 등장하였다. 이날 추의원이 의정단상에서 눈물까지 흘리며 연설한 것은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추의원의 이러한 눈물의 연설의 의미도 야당 대표의 반응에 이내 묻혀버리고 말았다.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16일 대구시 간부당원 이취임식에서 “김대중전대통령이 북한이 핵개발 고폭실험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도 돈을 갖다줘 핵폭탄을 만들게 한 것은 利敵행위” 라고 하면서 대북송금 문제는 이번 정권이 안되면 다음 정권에서도 그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소리를 높였다. 최대표는 정상회담과 금강산 사업으로 북한에 준 돈의 규모도 언급했다.
위기의 막다른 골목으로 가고 있는 북핵 문제
대북문제에 대한 이러한 여야의 시각차를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그 차이가 크다. 그러나 큰 시각차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금의 북핵문제는 '대결적 폭발'이냐 '외교적 해결'이냐는 위기의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일부에서는 핵 연료봉 재처리 완료 통보를 반신반의하고 있지만 이를 ‘중대 문제’ 로 규정하며 북한에 대해 ‘핵개발 고수와 폐기후 대화’ 가운데 양자택일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 미국의 이러한 입장은 드물게 강경해 보인다.
미국의 이러한 자세는 행정부와 한반도 전문가들의 경종에서 나타나고 있다. 페리 리포트 작성자로 널리 알려진 윌리암 페리 전국방장관이 15일 북한의 최근 움직임과 부시 대통령의 경직된 북한觀으로 인해 “올해 북한과 미국이 전쟁으로 갈 수 있다” 고 워싱턴포스트에서 경고한 데 이어 현대의 대북송금문제를 파헤친 의회조사국의 래리 닉시는 최근 호(7.17) 파이스트 에코노믹 리뷰(FEER)에서 “한반도에 7-10월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는 내용으로 기고했다.
미 정가 일부에서는 이라크전쟁에 승리하였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대량살상무기(WMD)의 증거를 찾지 못해 곤혹에 처해있는 부시 대통령이 내년 선거를 앞두고 북한을 공격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김정일 제거론’ 이 제시되고 있고 미 의회가 북한반체제 인사인 박갑동씨에 이어 황장엽씨 초청을 서두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미국이 북한정권을 허물기 위해 탈북자 수용을 고려하고 있는 것도 매우 주목할만하다.
그동안 미국 조야에서 탈북자 수용문제는 중국을 자극할 수도 있고 전략적으로 중국을 미국쪽에 묶어두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던 측면이 있었다. 미 의회쪽에서 토니 홀(오하이오 민주,지금은 FAO 대사), 커크(일리노이 공화)등 일부 하원의원들이 개인적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여 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움직임은 북핵문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대북봉쇄론과 정권교체론이 힘을 얻고 있고 디펜스 포럼 등 민간단체의 활동과도 유관하다. 미 국무부는 탈북자들에게 P-2 난민지위부여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역할이 실종되고 있는 외교적 해결
그러나 북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에 위기만 상존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외교부 부부장 다이빙궈는 지난 12-15일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에게 향후 확대다자회담을 조건으로 1차적으로 미국, 중국, 북한의 3자 회담 개최를 제의하여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곧 미국 방문을 서두르고 있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존 볼튼 차관도 이런 움직임에 대해 기대를 표시하고 있다.
북핵문제와 관련 긴박한 국제적인 움직임에서 다시 돌아와 국내 상황을 보면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대화의 모멘텀을 살려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대응방안은 아직 걸음마 같은 원론에 머물고 있다. 앞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야의 움직임은 우리가 왜 임진왜란이나 한일합방과 6.25와 같은 위기를 초래하였으며 우리의 대응이 자력에 의한 위기해결로 연결되지 못한 숙명적인 한계를 인식하게 한다.
추미애의원이 소속된 민주당이 주장하는 햇볕정책의 정당성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더 많은 국민들이 왜 대북송금 문제를 정확하게 밝히길 원하는지 그 이유를 헤아려야 한다. 그 이유가 비호남 지역 사람의 편견인가? 추의원은 야당의원들을 포함 우리 국민들이 긴장완화와 위기극복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렸다고 하였지만 진정 지금 긴장과 위기가 해소되었는가? 그것은 옹졸하게 작은 위기를 피하기만 하다가 맞는 큰 위기가 아닌가?
오히려 많은 국민들은 인내와 걱정을 하며 DJ가 떳떳하게 대북송금을 했다면 왜 밝히기를 꺼리며 150억원+알파의 비자금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남북화해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그 과정에 불순한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성경을 읽기 위해 촛대를 훔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선행이라고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남북회담대가와 금강산사업외에 북한의 정상적인 외화수입으로 가능하였는가?
'눈물의 연설' 과 '이적행위론' 으로 대립하는 동안
최근의 북한의 태도를 보면 감성적이고 편식성의 평화주의에 입각한 자비가 결국 핵무기와 미사일이라는 위협으로 돌아오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대북지원은 북한 동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북한 정권의 기반을 강화하는 데 오용되었음이 분명하다. 추의원은 과거 보스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정을 피해 정조를 유린당하며 쫓겨다니는 탈북여성들이나 사업이 부진해 쫓겨난 현대가족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DJ의 대북지원을 이적행위라고 보는 한나라당은 대북정책에 면제부를 받을 만한가? 미국의 의원들이 탈북자들을 위해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조치를 고려할 때 한나라당에서는 이에 어떤 조치를 취하였는가? 그리고 국내에 있는 탈북자들이 미국 등 다른 나라로 빠져나가려고 하는 있는 즈음 한나라당은 탈북자들을 위해 어떤 정책대안이라도 제시하였는가? 그리고 그간 황장엽씨나 지만원씨가 북한현실을 고발하며 당한 수모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였는가?
어떻게 보면 한나라당은 냉전이 벌써 끝이 났는데도 아직 냉전이라고 생각하면서 환상적 분위기에 도취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늘 반대를 위한 반대에 익숙해 있고 대안도 없이 그저 말꼬리나 잡는 행태 속에서 여당의 어설픈 정상회담과 대북지원이 가능하였다고 보면 한나라당도 그간 잘못된 정책에 절반 이상의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야 한다. 춥다고 피하고 덥다고 피해온 한나라당의 보신주의 대북정책은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청와대는 국회를 통과한 새 대북송금특검법을 거부할 것이라고 하고 있고 여당은 동 법안을 ‘반민족적 반민주적’ 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여야는 국정에 대한 진지한 논의보다 내년 총선을 의식한 정쟁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우리가 ‘눈물의 연설’과 ‘이적행위론’ 으로 대립하고 있는 동안 북핵문제는 강대국의 손에 넘어가고 우리는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게된다. 상대가 돌을 그릴 때 산을 그리고 배(船)를 그릴 때 바다를 그리면서 대북정책을 두고 여야가 서로 포용하고 협조할 수는 진정 없단 말인가!
출처 : 이슈투데이
2003/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