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치학의 변화와 발전방향
이 정 복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Ⅰ. 한국정치학의 변화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정치학은 4세대에 걸친 변화를 나타냈다. 제1세대는 이선근, 신도성, 박일경, 서임수, 민병태, 이용희, 김경수, 신기석, 김성희, 윤천주, 김상협, 김운태, 차기벽, 박동서, 조효원, 김두희 교수 등으로 해방 직후 창설된 정치학과의 교수들이다. 제2세대는 이들의 제자들이거나 제자벌이 되는 김영국, 한배호, 김하룡, 박봉식, 구영록, 구범모, 오기평, 장위돈, 손재석, 한흥수, 이홍구, 노재봉, 김경원, 이용필, 이영호, 백완기 교수 등으로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후반에 걸쳐 정치학 교수로 임용된 세대이다. 제3세대는 제1세대와 2세대의 제자들로서 한승주, 어수영, 최명, 길승흠, 김영작, 황수익, 최상용, 한상일, 김학준, 김홍우, 서진영, 최장집, 이신행, 안청시, 신정현, 장달중, 신명순, 김세균, 하영선, 하영출, 박상섭, 양승태, 이갑윤, 손호철, 임혁백 교수 등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반에 걸쳐 교수로 임용된 세대이다. 제4세대는 제3세대의 제자들이거나 제자벌이 되는 박찬욱, 최정운, 유홍림, 신욱희, 장훈, 김병국, 함재봉, 조인원 교수 등으로 1980년대 후반과1990년대에 교수로 임용되었다.
제1세대의 교수들이 해방 이후 1950년대 중반까지 가르친 정치학은 법-제도적, 사상사적, 역사적 정치학이었고, 헌법학과 경제학이 포함된 정치학이었다. 구미 민주주의 국가의 법과 제도, 서양정치사상사, 구미와 한국의 정치사, 국제정치, 국제법, 한국헌법, 행정법과 경제학개론, 재정학 등으로 구성된 정치학이었다. 일제시대에 대학에서 정치학 교육을 받은 분이 몇 분 안되었기 때문에 법학, 경제학, 역사학 전공자들도 정치학과 교수로 임용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친 것이다. 당시의 정치학과는 인문사회과학의 중요한 분야는 대개 가르치는 일종의 종합학과였다.
제1세대 교수들은 교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던 제2차 대전중의 일제시대 교육을 받은 분들이었고, 그들은 대체로 일본 학자들에게서 배운 독일과 영미의 정치학, 법학, 경제학, 역사학을 가르쳤다. 초창기 정치학은 독일의 국가학적 전통과 영미 정치학의 자유주의 전통을 모두 포함하였으나 영미 정치학의 자유주의 전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민병태 교수는 영미 정치학의 전통 중에서도 사회민주주의적인 학파에 속하는 해롤드 라스키를 한국정치학계에 집중적으로 소개하였다. 국제정치학 교수들은 국가간의 힘의 대결을 중심으로 한 영미의 현실주의적 국제정치학을 소개하였다. 한스 모겐소가 대표적 이론가인 현실주의는 제1차 대전 이후 국제기구를 이용해 세계평화를 유지하려는 이상주의가 실패한 이후 나온 국제정치이론으로 냉전시대의 국제정치이론이었다. 모겐소는 국제정치의 본질을 국가간의 권력투쟁으로 보고 그 기원을 인간 본성에서 찾았다. 그러나 이용희 교수는 이러한 영미의 국제정치학이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보편화하는 논리라고 비판하고 주체적 시각의 정립을 주장하였다. 이 교수는 구미의 국제정치이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던 시대에 이론이 나온 역사적 배경과 이론의 실천적 결과를 이해할 것을 촉구하였다.
제2세대 정치학 교수들이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 가르친 정치학은 미국의 과학주의 정치학, 혹은 행태주의 정치학이었다. 행태주의 정치학은 정치행태에는 자연현상과 마찬가지로 법칙성이 있다고 믿고 정치학자들은 가치중립적으로 이러한 법칙을 찾는 연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법-제도적, 사상사적, 역사적 정치학이 기술적인(descriptive)성격을 띤 데 비해 행태주의 정치학은 설명과 예측(prediction)을 강조하였다. 행태주의 정치학은 방법론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사회학, 심리학, 경제학, 통계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방법론적으로는 사회조사방법론, 심리조사방법론, 계량경제학의 기법, 통계처리방법 등을 도입하여 정치학을 계량화하려고 하였고, 이론적으로는 구조기능주의,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의 여러 이론, Input-Output 이론 등을 도입하였다. 행태주의 정치학은 정치학의 대상에서도 구미정치뿐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제국의 비서구지역의 정치를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추가하였다. 미국의 정치학자들은 구미뿐만 아니라 비서구지역의 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치이론을 수립하고자 노력하였고 가브리엘 알몬드와 데이비드 이스턴의 정치체계론은 그러한 노력의 대표적인 경우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정치학의 변화와 발전방향
국제정치학 분야도 이와 같은 과학주의의 영향을 받아 연역적인 이론체계를 수립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실증적이고 계량적인 연구가 많이 나왔다. 특히 케네스 월츠의 국제정치 이론은 모겐소의 이론을 보다 과학화 한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월츠는 1959년에 나온 책에서 국제정치이론은 인간성이나 국가의 속성으로 환원시키지 않는 국제체계 자체의 구조적 성격에서 나와야 된다고 모겐소를 비판했다. 그 후 1979년도의 책에서 국제정치체계의 독립변수적 역할을 강조하는 국제정치이론을 제시함으로서 이와 같은 그의 주장을 구체화하였다.
제2세대 정치학 교수들은 국내 교육으로 교수가 된 다음 미국에 2, 3년 유학을 다녀온 분들과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교수가 된 분들을 포함하고 있다. 어떠한 경우든 제2세대 정치학 교수들은 미국의 행태주의 정치학을, 그 중에서도 정치체계론, 근대화 정치론, 비교정치론 등을 일본을 통하지 않고 직수입하여 가르쳤고 이러한 정치학이 한국정치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까지의 기간에는 제1세대 정치학자들의 법-제도적, 사상사적, 역사적 정치학도 한국정치학의 한 지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법-제도적, 역사적 정치학은 현저하게 퇴조하였다. 제1세대 정치학자들 중에서도 윤천주 교수 같은 분은 한국 유권자들의 투표행태 연구에 개척자적인 역할을 하였고 현재에도 계속 이 분야에 훌륭한 연구업적을 내고 계시지만 행태주의적 연구를 하는 대부분의 한국 정치학자들은 2세대 이후의 학자들이다.
제3세대 정치학자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르치고 있는 정치학은 그들이 미국 유학시절에 공부한 후기 행태주의 정치학과 정치경제학이다.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1970년대에 행태주의 정치학에 대한 회의가 일어났다. 예측을 중요시하는 행태주의 정치학이 미국의 민권운동, 반베트남전 운동, 워터게이트 스캔들과 같은 미국정치의 주요한 사건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회의가 일어난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들은 이와 같은 실패를 행태주의 정치학의 가치중립성과 계량화에서 찾았다. 미국 정치학이 행태주의 혁명이후 우리들이 추구하는 가치실현에 중요한 주제 보다는 투표행태와 같은 수량화 할 수 있는 분야에 연구가 편중되는 경향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후기 행태주의 정치학은 행태주의 정치학이 이와 같은 단점을 시정하고 정치학의 예측능력에 대한 과신도 버릴 것을 촉구하였다. 후기 행태주의 정치학은 정치는 경제와는 달리 계량화하기가 어렵고 무리하게 계량화 할 경우 오히려 현실을 왜곡할 가능성이 크다는 반성도 하게 되었다.
행태주의 정치학에 대한 이러한 반성 속에서 진보적인 정치경제학이 미국 정치학계에 1930년대이래 다시 대두하였다. 맑시즘, 프랑크푸르트 학파, 종속이론, 이마누엘 월러스타인의 세계체제론, 관료적 권위주의론, 브루스 커밍스와 같은 수정주의 학파가 미국의 정통 정치학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진보적 정치경제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진보적 정치경제학은 미국 정치학계에서는 소수파의 지위에 머물렀다. 합리적 선택이론이나 공공선택이론, 경제발전에 있어서의 국가와 시장의 역할, 그 중에서도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정치경제학이 미국정치학계의 주류를 형성했다.
국제정치학 분야에서는 모겐소의 현실주의, 혹은 월츠의 신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과는 대조되는 지역통합이론과 상호의존론과 같은 자유주의적 국제정치이론이 대두하였다. 로버트 코헤인과 조셉 나이가 주창한 자유주의는 국제정치 영역에는 현실주의적 속성을 가진 영역과 상호의존적인 속성을 가진 영역이 있다고 보고 현실주의는 후자의 영역을 이해하는 데 무력하다고 비판하였다. 이러한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은 미소간의 데탕트 분위기를 반영하는 이론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자유주의 이론을 배경으로 1980년대 초반에는 신자유주의 이론이 대두하였다. 신자유주의 이론가들은 현실주의 국제정치의 구조하에서도 국가들이 국제관계의 규범과 규칙을 자세하게 규정한 국제통화 레짐, 무역 레짐과 같은 레짐의 건설을 통해 서로 협력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제3세대 정치학자들은 거의 모두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쳤고 그 수도 제2세대보다 훨씬 많다. 그들 중에는 미국에서 가르치거나 미국의 정치학 관계 학회지에 논문을 게재한 학자들도 있다. 한국정치학의 수준은 제3세대 정치학자들의 등장으로 그 이전보다 한 단계 높아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제3세대 정치학자들이 한국정치학계에 소개한 정치경제학은 진보적 정치경제학과 자유주의적 정치경제학의 두 조류를 모두 포함했으나 진보적 정치경제학은 미국의 경우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아직도 정치학의 커다란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제4세대 교수들의 정치학은 제3세대 교수들의 정치학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제4세대 교수들이 유학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로 세계화(globalization), 정보화, 탈근대(post-modernism), 탈냉전의 시대적 변화가 일어나던 시대이고 이에 따라 정치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던 시대이다. 이러한 지평은 1980년대 초부터, 경우에 따라서는 1970년대부터 열린 지평이나 1990년대에 들어 더욱 뚜렷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제도론은 이러한 지평에 나타난 정치경제학의 새로운 경향이다.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법과 제도가 정치현실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 밀접해 있기 때문에 제도는 항상 중요했으나 피터 카젠스타인, 피터 홀, 존 아이켄베리, 마가렛 레비, 로버트 베이츠 등은 정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독립변수를 제도로 보고 제도에 대한 새로운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1990년에는 경제발전에 있어 제도의 중요성을 강조해 오던 더글러스 노스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함으로서 제도주의는 정치학에서나 경제학에서나 하나의 학파를 이루게 되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제도주의가 신자유주의적인 레짐 이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제도주의에는 레비와 베이츠 등의 연구에 나타난 바와 같은 합리적 제도주의(rational choice institutionalism)와 카젠스타인, 홀, 아이켄베리 등의 역사적 제도주의의 두 흐름이 있다. 이와 같은 두 가지 제도주의는 제도가 정치적 행위자들이 그들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맥락이라는 데 동의하지만 역사적 제도주의자들은 합리적 제도주의자들 보다 제도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역사적 제도주의자들은 정치행위자들을 합리적인 최대주의자(rational maximizers)라기보다는 관습적으로 규칙을 따르는 만족주의자(rule-following satisficers)로 보고 있고 정치적 선호도 가정의 세계에서가 아니라 제도에 의해 형성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역사적 제도주의자들이 보기에는 제도는 행위자의 전략뿐만 아니라 목표도 형성시키고 행위자들간의 협력과 갈등관계도 조정하는 것이다.
세계화의 정치경제학도 최근 나타난 정치학의 새로운 연구주제이다. 20세기 선진 구미제국에서의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성공적인 결합은 포디즘적 자본주의로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포디즘적 자본주의는 대량생산, 대량소비, 케인즈적 국가개입에 의한 경제발전과 완전고용, 코퍼라티스트적 계급화해를 포함하는 체제로 국가가 사회적 이해관계를 민주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해준 체제였다. 포디즘적 자본주의는 후진제국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조건으로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국내시장을 기반으로 한 체제였기 때문에 선진민주주의 국가는 자본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이해관계를 보장하는 정책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포디즘 체제는 1970년대부터 위기를 나타내기 시작했고 세계화로 포디즘 체제는 이제 작동이 어렵게 되었다.
자본이 다국적 기업을 통해 세계화되고 자본과 노동이 시장조건에 따라 국경없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는 사회적 이해관계를 민주적으로 반영하는 정책을 자본에 대해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없게 되었다. 포디즘 시대의 사회보장 국가는 세계화 시대에는 경쟁력강화 국가로 변하고 있는데 경쟁력 강화국가는 선거과정에 나타난 민의 보다는 자본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시 하는 국가인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출현한 경쟁력강화 국가는 자유민주주의를 공동화(hollowing out)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 자본주의, 민주주의의 문제는 정치학자들이 21세기에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숙제로 등장하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 관한 논의도 세계화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최근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정보화 사회론은 원래 다니엘 벨, 알랭 투렌, 앨빈 토플러 등의 후기산업사회론자들에게서 나온 이론이나 이러한 사회가 정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는 정치학자들에게도 지대한 관심거리이다. 노사간의 갈등을 주축으로 한 산업사회의 갈등과 물질적 가치관이 정보화 사회에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고 정보화 사회의 혁명적인 정보통신기술은 정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정치학자들의 연구 주제이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학자들은 정보화 사회의 정치를 정보화 사회론자들과 같이 낙관적으로 보는 사람들, 사무엘 헌팅턴과 같이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들, 그리고 그 양자를 다 포함한다고 보는 사람들로 대별할 수 있다. 그들은 정보화 사회 자체가 토플러가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제 3의 물결을 이룰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앤터니 기든스의 주장과 같이 제2의 물결의 연장에 불과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쟁하고 있다.
자유주의에 도전하고 있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에 대한 연구도 정치학의 새로운 경향이다. 주지하다시피 자유주의는 구미의 정치를 지배해 온 이념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결손가정이 많고 지역사회의 유대감이 약화되고 범죄율이 높아지고 청소년들이 마약에 빠지는 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알레스데어 맥킨타이어, 마이클 산델, 찰스 테일러, 마이클 월저와 같은 공동체주의자들은 이러한 위기를 자유주의의 결과로 보고 있다. 그들은 공동체가 인간의 선생활에 필요불가결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자들은 공동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우리들 각자의 자아(self)가 우리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공동체적 커미트먼트와 가치 속에 위치해 있고(embedded) 부분적으로는 그것에 의해 구성됨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는 자아를 가정의 세계에서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자아로 잘못 상정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공동체주의자들은 이론적으로 자유주의에 도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미타이 에치오니 같은 사회학자는 실제로 공동체 운동을 벌리고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비판이 부당하고 공동체주의가 파시즘으로 연결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공동체주의가 자유주의의 한계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공동체주의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은 두 가지 계기에서 일어났다. 첫째는 1990년대 초에 동구제국의 전체주의적 공산국가를 무너뜨린 힘이 시민사회라는 데서 연유한다. 전체주의적 공산국가에서도 시민사회가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전체주의적 공산국가를 무너뜨린 원동력이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1980년대에 일어난 라틴 아메리카 제국과 아시아의 민주화 물결도 이 지역의 시민사회에 대한 연구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둘째는 공동체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은 미국에서의 공동체 약화현상이다. 미국의 종교적, 시민적 결사체의 회원수는 감소하고 있고 로버트 퍼트남 교수의 지적과 같이 혼자 볼링을 하고 있는(Bowling Alone)사람들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시민사회 약화의 원인이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공동체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간에 진행되고 있다.
탈근대의 시대를 맞이하여 자유주의에 대한 회의와 더불어 모더니티에 대한 회의도 일어나고 있다. 오랫 동안 모더니티는 인류를 무지와 불합리성으로부터 구원해 줄 역사적인 원동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으나 최근 이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양차 세계대전, 나치즘과 파시즘, 유태인 대학살, 대공황, 베트남전, 천안문 학살, 민족분쟁, 사회적 공동체의 해체현상 등이 일어난 근대를 회고해 볼 때 근대가 이룩한 업적인 서구 문명, 기술발전, 산업화, 근대국가, 민주화 등에 대해 회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사회과학이 미래를 예측하고 국가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우리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고 있고 사회과학이 오히려 권력과 금력을 가지고 있는 편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현대가 과거보다, 혹은 근대가 전근대 보다 낫다고 평가하고 있지 않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지난 한 세기 이상 우리들이 수용하고 있던 근대과학의 기본가정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 자본주의, 맑시즘, 기능주의,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전체적인 세계관(holistic world views)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사회과학 내에서의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으로의 학문의 엄격한 분과화에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요인들을 추려내어 그들간의 관계를 분석하고 이에 기반해 이론을 제시하는 근대사회과학의 방법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들은 결정론보다는 불확정성, 통합성보다는 차이성, 반복적이고 일반적인 것보다는 비반복적이고 유일한 것, 인과성보다는 텍스트의 관계를 밝히는 데 더 큰 관심을 두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아직 정치학의 주요 경향을 형성하고 있지는 않다. 정치이론을 전공하는 학자들 중에 미셸 푸코와 자크 데리다,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니체에 관심 있는 학자들이 있고 대학원생과 젊은 학자들 중에 이러한 경향에 끌리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위르겐 하버마스 같은 사람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강력한 비판자로 모더니티가 인류를 무지와 불합리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사명을 아직도 완수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비판적 합리성에 기반하여 근대의 프로젝트를 완성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스트와 하버마스 같은 사람과의 논쟁도 20세기 말에 나타나고 있는 정치이론의 새로운 이슈이다.
탈냉전시대는 국제정치학 분야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현실주의 이론과 신현실주의 이론이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 국제정치 이론이라면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과 신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은 데탕트 시대와 탈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국가간의 협조를 강조하는 이론이다. 탈냉전시대를 맞이하여 현실주의나 신현실주의 이론보다는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 이론이 과거보다는 더 큰 적실성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정치학은 분석단위에 있어서 국가뿐만 아니라 초국가 기구, 국가 내의 지방정부와 여러 비정부 기구를 포함하게 되었고 분석영역에서는 안보군사 영역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환경 등 다양한 영역을 포함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해체를 주장하는 리처드 애슐리의 해체주의나 국가와 국제체제의 복합성을 강조하는 알렉산더 웬트의 구성주의와 같은 탈근대의 국제정치이론도 탈냉전시대를 맞이해서 각광을 받고 있다.
제4세대 학자들도 거의 모두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쳤고 그들의 수는 제3세대 보다 훨씬 많다. 제4세대 중에는 한국에서 학위를 마친 교수도 상당수 있지만 그 주류는 아직도 미국 박사들이다. 현재 한국정치학계는 제3세대와 제4세대 학자들이 이끌고 있다. 제2세대 학자들 중 아직 학계에 남아있는 분들은 이제 정년퇴임을 몇 년 앞에 두고 있다. 제3세대와 4세대 교수들은 세계화, 정보화, 탈근대, 탈냉전의 시대를 전후해서 나타나고 있는 바로 소개한 바와 같은 정치학의 새로운 경향을 흡수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제3, 4세대의 정치학 교수들은 외국의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과 그 실천적 의미, 그리고 이론의 한계를 모두 파악해서 가르칠 수 있는 학문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제4세대 교수들 중에는 이러한 새로운 경향에 대해 학위 논문이나 연구논문을 쓴 학자들도 있다.
정치학에 이상 소개한 바와 같은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이 한국정치학에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지는 않다. 한국정치학은 종전과 같이 정치사상, 정치학 방법론, 정치경제론, 정치과정론, 지역정치론, 한국정치론, 국제정치론으로 구성되는 정치학을 유지하면서 정치학의 새로운 경향도 부분적으로 흡수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정치학은 법-제도적 정치학에서 행태주의적 혹은 과학주의적 정치학으로, 그리고 다시 정치경제학적 정치학으로 변화하였고, 최근에는 탈근대적, 탈냉전적 정치학으로의 변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국 정치학자들의 교육수준도 현저하게 향상되었고 그들의 숫자도 1946년 정치학과 창설 당시의 기십명에서 현재는 천 수백명으로 증가하였다.
Ⅱ. 한국정치학의 발전방향
지난 반세기간의 한국정치학의 변화는 한국경제의 변화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은 눈부신 발전이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자체기술의 부족으로 생산재를 수입해야만 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는 바와 비슷한 취약성을 한국정치학도 가지고 있다. 한국정치학의 눈부신 발전 속에는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고 그 발전방향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정치학은 미국정치학의 변화에 상응해서 변화하였다. 미국정치학의 변화는 미국의 정치현실에 기반한 변화였다. 가치중립적인 행태주의와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은 각각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호소력과 냉전에 대한 이론적 대응이었고 후기행태주의, 정치경제학, 자유주의 국제정치이론은 1970년대 미국의 정치적 병폐와 경제적 지위의 약화를 반영한 이론이었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연구경향은 모두 탈근대와 탈냉전 시대의 새질서를 모색하는 이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정치학은 미국의 정치현실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업적을 내고 있다. 한국의 정치현실이 미국의 정치현실과 상응하는 한, 한국정치건 미국정치건 정치에 공통된 분모가 있는 만큼에 있어 미국정치학은 한국에도 부분적으로는 적실성이 있다. 그러나 미국정치학이 한국을 배경으로 나온 것이 아닌 만큼 전체적으로는 적실성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1950년대의 법-제도적, 사상사적, 역사적 정치학은 당시의 한국정치현실을 이해하는 데는 무력한 정치학이었다. 한국의 민주적인 법, 제도, 이념은 정치현실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한국정치는 겉으로는 민주적인 법, 제도, 이념을 가졌으나 실제는 이와는 다른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이중적 구조를 법-제도적, 사상사적, 역사적 접근법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다른 한편, 법-제도적 정치학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구미 민주주의의 제도, 사상, 역사에 대한 연구와 교육은 신생 대한민국에 필요한 정치학이었으나, 이러한 연구와 교육은 1960년대 행태주의 정치학의 유행으로 일거에 쇠퇴하게 되었다. 그러나 법과 제도보다는 정치행태의 이해를 강조하는 행태주의 정치학도 당시의 한국정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접근법은 아니었다. 첫째로 알몬드와 이스턴의 정치체계론은 군사독재시대의 한국정치를 이해하는 데 맞지 않는 이론이었다. 한국정치에 대한 체계론의 적용은 한국정치의 이해를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둘째로 유권자들이나 국민들의 정치행태 연구, 국회의원들의 정치행태 연구가 한국정치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러한 행태연구로 한국정치의 중요한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이러한 연구는 당시 한국정치에서 주변적인 가치밖에 없었던 투표나 국회에 그 이상의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하였다. 셋째로 근대화론은 군사독재시대를 합리화 해주는 이론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았다. 군사독재시대의 한국정치학은 무의미한 학문으로 정체하거나 정치학의 국민윤리학으로의 전락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독재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았다. 넷째로 현실주의적 국제정치이론은 냉전과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강대국들의 대결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을 주었지만, 이 이론은 실천적 의미에서는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정당화하는 이론이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이용희 교수는 이 이론이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이데올로기성을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국제정치이론의 수립을 주장했고 서울대 외교학과의 그의 제자들이 이러한 뜻을 계승하고 있으나 우리의 국제정치이론 수립은 우리 정치이론의 수립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요원한 일이다.
1980년대의 한국에 유행하였던 맑시즘, 프랑크푸르트 학파, 종속이론, 관료적 권위주의론, 세계체제론은 이와 같이 무력했던 한국정치학을 대치한 진보적 정치경제학이었다. 진보적 정치경제학의 비판적 성격은 군사독재에 저항하던 청년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한국정치의 현실적 발전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맹점을 가지고 있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소외집단의 반자본주의 혁명, 외국경제와의 관계단절 등은 한국의 군사독재에 대한 대안이 아니었다. 합리적 선택이론과 국가와 시장이론은 한국의 정치경제적 발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지만 과거를 설명할 수 있을 뿐 미래를 예측하거나 미래의 발전방향을 제시하는 데는 무력한 이론이다. 진보적 정치경제학이나 자유주의적 정치경제학이나 모두 한국정치를 그들 각각의 이론적 틀 안에 가두어 놓고 봄으로써 한국정치에 대한 제한적인 이해밖에 성취하고 있지 못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한국정치의 이해에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
국제정치학 분야에서의 자유주의나 신자유주의적 국제정치경제이론은 현실주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선진자본주의 제국의 이해관계를 정당화해 주는 이론이다. 선진제국간의 관계는 이제 전쟁이 일어나기 어려운 관계로까지 발전하였고 경제관계의 조정이 가장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한간의 군사적 대치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강대국들이 한반도에 대한 전략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대립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이 이론의 적실성이 선진제국보다는 낮은 것이다.
최근 한국정치학계에 소개되고 있는 제도론적 정치경제학, 세계화의 정치경제학, 정보화 사회론, 공동체주의론, 탈근대론, 탈냉전의 국제정치학도 한국이 제도개혁이 필요하고 세계화와 정보화의 대세에 직면해 있고 공동체의 건설이 필요하고 탈근대적 현상을 노정하고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에서와 같이 탈냉전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한 우리에게도 유용한 이론이다. 그러나 한국정치는 전통성, 근대성, 탈근대성의 다층적 성격을 나타내고 있는 만큼 이러한 탈근대 이론으로 한국정치의 전체적인 본질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한국정치의 전통적 특성이 근대성을 변질시키고 있고 구미제국이 달성한 근대성의 업적을 달성하고 있지 못한 우리에게 있어 탈근대의 이론은 우리의 관심을 근대성의 병폐를 치유하기보다는 앞으로도 계속 추진해야 할 근대화의 작업으로부터 이탈시키는 역기능을 할 우려도 있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미국이나 일본의 생산재를 수입해서 괜찮은 상품을 생산하고 있는 바와 같이 한국정치학도 미국의 이론을 수입하여 겉보기에는 괜찮은 정치학을 생산해 왔다. 한국정치학계가 생산한 정치학은 한국정치의 절실한 문제보다는 미국정치학의 변화에 상응해서 변화해 온 정치학이었다. 한국경제가 알렉산더 거센크론이 말하는 ‘후진성의 이점’을 이용해 빠른 발전을 해 온 바와 같이 한국정치학도 미국정치학을 도입함으로서 빠른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자체기술의 부족으로 올해의 경상수지 적자가 작년의 세 배에 이르는 등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바와 같이 한국정치학도 주체적인 기반의 결여로 위기에 처해 있다. 정치학이 해방직후에는 가장 매력적인 학문분야였으나 오늘날에는 청년학생들로부터나 기성세대들로부터나 그 존재의의의에 대해 의심을 받는 경우도 있는 것은 정치학과 학생들의 데모 참여뿐만 아니라 정치학의 이러한 위기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정치학이 지난 반세기 간 주체적인 발전을 하지 못한 이유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첫째로 정치학의 전통이 없는 나라에서 해방과 더불어 갑자기 시작된 정치학이 외국에 의존해 발전해 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사정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였으나 정치학의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러했다. 일제 식민시기에 법학이나 경제학을 대학에서 공부한 사람들에 비해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들의 수는 훨씬 적었다.
둘째로 오랜 기간에 걸친 권위주의적 통치는 정치학의 주체적 발전에 호적한 환경이 아니었다. 경제학은 권위주의 통치시기에도 한국경제를 정직하게 진단하고 처방할 수 있었고 이러한 진단과 처방은 독재자들에게도 유용한 것이었다. 경제학의 이와 같은 진단과 처방이 독재자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것은 독재자의 심장을 찌르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학은 권위주의 통치시기에 한국정치를 정직하게 진단하고 처방할 수 없었다. 그러한 진단과 처방은 독재자들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였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았다. 독재자들은 정치학자들이 그들의 심장을 찌르기 전에 보상과 회유의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을 우군으로 만드는데 대체로 성공하였다.
셋째로 나라가 없었고 나라를 세운 다음에는 권위주의 통치가 지속되어 정치학이 주체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면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정치학 중에서도 한국정치분야의 발전을 가장 크게 저해한 요인이 되었다. 현재 한국정치론은 가장 후진된 분야이다. 미국 정치학의 경우를 본다면 미국정치론이 가장 발전된 분야이고 정치학의 전분야가 미국정치론의 기반 위에서 발전되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한국정치론의 표준적인 교과서 한 권이 없을 정도이고 이러한 교과서가 없는 것은 현대한국정치의 각 시기와 분야에 대한 면밀한 연구가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한국 정치학자들이 미국에서 한국정치에 대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으나 이러한 연구는 한국정치에 대한 자료발굴과 수집보다는 미국의 정치학 이론을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한국정치에 적용한 경우가 많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와 같이 1945년부터 1950년간의 한국정치를 연구하는 데 20여년을 바치고 있는 정치학자가 우리에게는 없는 것이다. 최근 이 분야의 연구에 커밍스와 같은 정열과 끈기를 가지고 자료를 발굴, 수집하여 커밍스의 편향과 오류를 지적하는 연구가 나와 다행이나 이는 실로 예외적인 경우이다.
전근대 시대의 한국정치의 성격, 일제시대, 한국정치사상에 대한 연구가 현대한국정치의 이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연구 역시 거의 황무지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대, 연대, 고대의 정치학과에는 한국정치사상 전공교수가 없다. 이 분야의 연구자가 없어서 교수가 없기도 하겠지만 과내 교수들 간의 역학관계도 한국정치학 발전을 위한 이성적인 선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치학도 한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입 정치학의 성격이 강하나 일본정치사와 일본정치사상은 정치학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자리잡고 있고 마루야마 마사오 교수(1914~1996) 같은 학자는 일본 정치사상의 연구로 일본 정치학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고 있다. 마루야마 교수가 일본 정치학의 일본적 기반을 닦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학문적 자질에도 기인하지만 그가 이러한 작업에 오랫동안 종사했다는 사실에도 있는 것이다. 그는 20대부터 세상을 떠난 해까지 60여년간 이 분야의 연구를 계속한 것이다. 그가 20대부터 쓴 일생의 저작집은 현재 16권의 전집으로 발간중에 있고 이 저작집은 일본 정치학의 초석이 되고 있다. 과거 한국의 대표적 정치학자들 중에는 정계진출 등으로 정치학에의 종사기간이 짧고 그 짧은 기간에도 정치사상부터 한국정치, 국제정치에 이르는 정치학의 전분야, 미국정치부터 러시아정치, 아시아정치에 이르는 전분야에 대해 연구를 하는 교수도 있었다. 일본의 경우와는 대조적인 현상이고 일부 한국 정치학자들의 이와 같은 특성도 한국정치학이 일반론 이상의 수준으로 발전하지 못한 한 이유로 작용하였다.
넷째로 한국정치론의 후진성뿐만 아니라 한국정치학의 불균형 상태도 한국정치학의 주체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정치사상, 주요 외국의 정치, 국제정치 등의 분야를 등한시하고 있다. 우리와는 가장 밀접한 나라인 미국정치에 대한 전공자도, 한국정치의 발전을 위해 참고가 많이 될 나라인 서구제국의 정치에 대한 전공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 외로 세계 각 지역에 대한 전문가가 최소한 몇 명씩은 필요하나 전문가가 전혀 없는 지역이 많다. 정치사상이나 국제정치 분야에서 박사를 받은 학자들도 그렇게 많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정치학자들이 미국정치학의 지배적인 접근법을 한국정치에 적용한 논문으로 박사를 받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다섯째로 미국정치학은 사회학, 심리학, 통계학, 경제학 등의 연구경향과 업적을 적극적으로 흡수하면서 발전하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미국정치학은 사회학, 심리학, 통계학적인 특성을, 1980년대부터는 경제학적 특성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다. 한국정치학은 인접학문분야의 연구경향과 업적을 흡수하기는커녕 그 분야가 점점 협소해 지고 있고 정치학 내부에는 해체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사회학은 종속론, 세계체제론, 관료적 권위주의론, 민중론, 시민사회론 등과 같은 정치학이론을 적극적으로 흡수하여 한국사회학의 지평을 넓혀온 데 비해 한국정치학은 정치학이 다루어야만 할 이러한 분야들에서조차 사회학에 뒤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느낌을 필자는 받고 있다. 한국정치학은 정치학, 국제정치학, 행정학, 국민윤리학으로 나뉘어 있어 통합적인 발전도 못하고 있다. 한국정치학의 주체적 발전을 위해서는 인접학문의 발전도 흡수하고 내부적으로는 전문화하면서도 전문분야 간의 유기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데 이와 같은 발전이 일어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탈근대의 시대, 국제적으로 탈냉전 시대를 맞이하여 정치학에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 한국정치학은 스스로의 항해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양의 조류와 파도에 휩쓸려 이 지평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한국정치학은 전통시대와 근대에 대한 주체적인 정리를 하기도 전에, 남북한간의 냉전을 해소하기도 전에 탈근대와 탈냉전 시대를 맞고 있다. 한국정치학은 이 지평에서 후퇴할 수 없다. 한국 정치학자들은 이 지평에서 새롭게 자세를 가다듬고 한국정치의 전통, 근대, 탈근대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진단, 처방해야 할 과제를 가지고 있다.
한국정치는 아직 근대의 과제를 성취하고 있지 못하다. 구미제국은 우리에 비한다면 전사회성원들의 유대감에 기반하고 전사회성원들의 의사가 국가에 반영되는 제도적 채널을 가진 강력한 근대국가를 가지고 있다. 전사회성원들 간의 유대감은 국가가 전사회성원들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하는 복지체제로 이룩하고 있고 전사회성원들의 의사는 정당과 선거를 통한 민주적인 정치과정을 통해 국가에 반영되고 있다. 한국은 전사회성원들의 유대감을 보장하는 복지체제도 없고 정당과 선거는 전사회성원들의 의사를 국가에 반영하는 역할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외견상으로는 강력한 근대국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한국은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이 있을 뿐이지, 강력한 근대국가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한국의 근대국가는 전사회성원의 유대감과 전사회성원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당과 선거에 기반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정치는 상대적인 의미에서 구미제국의 사회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 개인의 확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있지 못하다. 근대는 한편에서는 근대국가를, 다른 한편에서는 이성적 개인을 확립해 가는 과정이었다. 이 두 목표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근대국가의 확립 없이는 자립적 개인이 있을 수 없고 자립적 개인이 없이는 이성적 개인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립적, 이성적 개인이 없이는 근대국가도 확립되기 어렵기 때문에 근대국가와 이성적 개인의 관계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정치는 분단을 극복해서 근대적인 통일국가를 만들어야 할 과제, 그리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로부터 자주적인 근대국가를 만들 과제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과제가 얼마나 지난한 과제인가에 대해선 재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 근대정치(modern politics)의 이와 같은 목표는 전통시대와 탈근대시대의 특성에 의해 촉진되고 있기도 하고 저해를 받고 있기도 하다.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은 삼국시대,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해 외국의 침략에 시달렸고 그 후에는 일제의 식민지로 나라를 잃었었기 때문에 강력한 국가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데에는 상당한 합의를 가지고 있다. 전통시대로부터의 역사적 경험에 기반한 이와 같은 우리의 합의는 근대국가의 형성을 촉진하는 요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전통시대의 유산은 우리가 도입한 근대정치제도의 근대성을 침식하고 있기도 하다. 탈근대의 시대정신은 근대의 허구성과 위선성을 폭로하고 고발하고 있기 때문에 근대를 만들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보다 나은 근대를 만들라고 하는 경종이 될 수도 있으나 근대의 작업을 방해하는 어려움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
한국정치학은 근대적인 복지민주국가의 수립, 이성적 개인의 확립, 통일국가, 자주국가의 수립이라는 한국정치의 목표를 중심으로 발전해야 한다. 이러한 근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전통과 탈근대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진단과 처방을 내놓아야만 한다. 한국정치학은 외래 이론을 한국정치현실에 덮어씌우기보다는 현실의 이해와 개선을 위해 도움이 되는 한에 있어 외래 이론을 이용해야 할 것이다. 한국 정치학자들은 한국현실과 외래 이론의 상호작용에 기반해 한국정치 이론을 수립하고 한국정치이론을 가지고 정치현실을 볼 수 있는 미래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한국정치학의 변화와 발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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