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북한: 지속되는 크리스챤 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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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뉴스는 베이징에서 북한 핵무기 위기에 대한 다국적 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북한의 박해 받는 이들과 학대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이 무시된 채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도했다.
AN 뉴스에 따르면 북한의 종교자유와 예배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통제와 폭력적인 박해에 대한 소식을 전하면서 또한, 북한에서 기독교인이 경험하고 있는 상황은 인간권리의 잔인함이 보여지는 상징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심각한 위기를 다루면서, 워싱턴 포스트지는 수천 명의 북한 여성들이 강제로 매춘을 당하며 첩으로 팔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러한 악몽같은 상황은 이를 경험한 북한주민들만이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 크리스챤 봉사자는 만약 북한의 벽이 무너지고 난 후 우리가 무엇을 보게 될 것인지 상상할 수 있겠냐고 나에게 물었다. 나의 예상으로는 지금의 현대시대에 비교할 수 없는 박해와 대량학살이라는 것이다.
당신은 고통당하는 북한의 크리스챤들과 주민들을 위해 당신을 희생하여 기도하겠는가. 어떠한 정권과 어떠한 사람도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보다 더 위대할 수는 없다.
최악의 박해자들: Paul Sharpe
23-Feb-2004
오픈 도어즈(Open Doors)는 박해의 혹독함에 따라 국가의 순위를 매긴 ‘월드 와치 리스트’ (World Watch List)를 발표했다. 북한은 두 번째 나라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함께 지난 해에 이어 한번 더 리스트의 수위를 지켰다. 다음의 나라들은 10위권 안의 국가들 순위이다.
1. 북한
2. 사우디 아라비아
3. 라오스
4. 베트남
5. 이란
6. 투르크메니스탄
7. 몰디브
8. 부탄
9. 버어마
10. 중국
이러한 비교 리스트는 종교자유에 대해 가장 극심하게 박해하는 국가들을 나타낸다.
10권 안에서 탈락된 나라들로는 이전에 5위를 했던 파키스탄이 있고, 9위를 기록했던 소말리아가 있다. 이란에서 크리스챤에 대한 증가되는 폭력과 체포는 5개 곳에서 발생했다. 중국에서는 지하교회가 탄압받고 있으며, 계속 진행되는 버마의 크리스챤 박해로 이들 두 국가가 10위권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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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박해국가 명단
23 Feb 2004 -- 오픈 도어즈는 최근에 “신앙을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집중적 박해 국가들”의 연간 월드 와치 리스트 -World Watch List (WWL)를 발표했다.
북한은 다시 한번 순위에서 1위를 나타냈고 사우디 아라비아는 그 뒤 2번째의 자리를 이었다.
그밖의 나라들로는 라오스 , 베트남,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몰디브, 부탄, 버어마와 중국이다.
중국과 버어마는 파키스탄과 소말리아 대신에 10위권 순위 안으로 들어왔다.
이러한 모든 나라들은 크리스챤에 대해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박해국가로 알려져있다.북한에서는 신앙으로 인해 죽임을 당할 수 있으며, 사우디 아라비아의 시민들은 무슬림인이 되어야 하고, 만일 그들이 개종한다면 그들은 법적으로 사형당할 수 있다.
라오스에서는 크리스챤 주민들은 철저하게 추방을 당하거나 투옥을 당하며 베트남의 몬타그나드(Montagnard) 지역 크리스챤들은 세계에서 가장 심하게 박해당하는 종족 중의 하나이다. 이란과 몰디브는 이슬람 공화국으로 기독교를 허용하지 않으며, 투르크메니스탄은 각자의 자기 예언자 형태(self styled prophet)에 의해 통치된다.
부탄의 크리스챤들은 난민처럼 유랑과 오명에 직면해 있으며, 최근 중국의 지하교회에 대한 탄압으로 중국은 10위권 자리 안에 확실하게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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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어두운 정권 치하의 기독교인들
28 February, 2004
Rome (AsiaNews) ? 베이징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다루고 있는 동안 북한의 많은 탈주자들에 대한 질문은 경시되었다. 그들은 본국에서 발생되는 종교적 자유와 인권에 대한 심각한 폭력에 대해 토론할 것을 요청했었다. 북한의 크리스챤들이 경험하는 상황은 냉혹함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소식은 북한의 종교 자유와 예배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통제와 폭력적인 박해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소식들은 그리스도인들과 간신히 해외로 도피한 정치적 반체제인사들과 관광객들, 정부의 고관들, 해외언론인들과 그리스도 대표단에게서부터 비롯되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대부분 수도 평양과 인접지역 안으로 통제받는다.
포럼18 뉴스 서비스(Forum 18 News Service)가 제공한 한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몇 명의 크리스챤 노인들이 중국근접 지역의 한 작은 마을에서 살해되었다고 전했다. 2000년도에 발생한 이 사건의 동기는 그들이 그들 신앙을 포기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이순옥씨와 같은 이전의 북한 죄수들은 사상재교육 수용소, 감옥 안의 기독교인들이 다른 죄수들보다 더욱 나쁜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북한의 테러 통치로 인해 주민들은 이웃의 사람들이 같은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을 10년 후에나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Human Rights Without Frontiers는 기독교인들은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10명의 인원 안에서 비밀리에 만나는데 구성원은 주로 같은 가족들이라고 밝혔다. 최근 몇해 동안 평양에서는 이러한 “영적 오염”에 대한 염려가 커가고 있으며 “타락한”주민들을 박해해왔다. 중국에서 예를 들어 10만명에서 30만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이 있는 지역에는 탈북자들을 사냥해 들이기 위해 평양에서는 베이징으로부터 지원을 얻어왔다.
한 일본인 인권운동가는 북한 정부가 국경에서 불과 20km 떨어진 중국 양지, 질린 지방지역에 가짜 교회를 지었다고 말했다. 중국경찰은 많은 탈북자들을 그곳에서 체포했으며 그들을 북한으로 다시 돌려보냈다. 오랜 심문기간 동안, 북한정부의 고관들은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자들에게 중국에 있는 동안 어떤 종류의 한국 선교사들과 접촉을 했는지, 그들이 성경을 읽었는지, 예배에 참석을 했는지를 물었다. 선교사들과 접촉한 것에 대해 인정을 하고 어떤 종교적인 입회와 행동을 한 것을 인정했을 때 그들은 투옥되거나 사형에 처해졌다. 어떤 자료들이 나타내주는 것처럼 남한교회의 개신교 목사는 목사의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다는 평양의 협박을 받게된다.
상황은 북한에서도 나을 것이 없다. 평양에는 겨우 2개의 개신교 교회가 있고 게다가 사제가 없는 하나의 카톨릭교회가 있으며 하나의 정교회가 있다. 많은 종교 예배에 참석한 외국인들은 이러한 의식과 신앙이 “가짜”이거나, 정부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믿지는 않지만 설교들은 많은 정치적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혹자들은 그들 교회 안에 정부의 선전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교회건물들이 지속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에는 어떤 정확한 형태의 신앙인들의 숫자와 예배장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2002년 7월에 유엔 위임의 인권 사무국의 요청으로 북한정부는 간단하고 애매한 북한의 그리스도인들의 지위에 대한 자료를 발표했다.
카톨릭 당국에 의하면 북한에는 800명의 신자와 2곳의 “공식 예배 센터“ 그리고 하나의 성당이 있다고 했다. 북한정부는 대략 12,000명의 개신교 교인들과 2개의 교회, “가족을 위한 500개의 예배 센터”, 그리고 20명의 목사가 있다고 말했다.
2004년 1월, 침례교의 모퉁이돌 사역회(Cornerstone Ministries)의 한 대표자는 US 위임의 종교자유 사무국에서 북한에는 10만 명의 개신교 신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정에 의하면 북한의 전체 2천400만 명의 인구 중에서 10만의 그리스도인이 있고, 12,000명은 개신교도들이며 4000명은 카톨릭 신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53년 정부가 공산당 노선으로 들어선 이후, 30만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실종되었고, 더 이상 그 나라에는 목사 또는 신부가 없으며 기독교 박해의 시대동안 모두가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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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중국: 탈북자들 기독교도로 개종하다
13 February, 2004
평양 (아시아뉴스) Pyongyang (AsiaNews/Agencies) - 기독교인들, 중국의 지하교회들, 그리고 외국 선교사들은 탈북자들이 배고픔과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중국으로의 탈출을 돕는 것에 생명을 희생하는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40만 명에 달하는 북한주민들이 식량과 일자리를 찾아 북동쪽의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평양을 도와 탈북자들을 재송환하기로 결정한 이후, 후자들은 살수 있는 다른 장소를 찾기까지 은신해야만 한다. 중국인 난민들에게 재송환이란 감옥, 고문, 엄중한 심문, 국외추방과 중한 노동을 의미한다.
북한에서 감옥이라는 의미는 매우 강하다. -이는 학대와 식량의 부족 때문이다- 많은 숫자의 죄수들이 그들의 수감생활을 끝내지 못하고 죽는다. 기독교 선교사들을 만나고, 그들을 돕는 봉사자들을 만나게 된 이후 개종한 탈북자들에게 그 위험은 더욱 배가된다. 만약 그들이 발각되어 북한으로 돌려보내지게 되면 그들의 형벌은 더욱 혹독해지며,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탈북자들을 돕기 위해 기독교 단체와 선교사들은 돈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재정적인 원조를 한다. 주로 그들은 이 돈을 중국의 외교 사무소와 접촉하는데 쓰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외국 -주로 남한으로 도망할 기회를 얻게 된다. 중국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중국인과 한국인 가족들은 기독교로 개종하는 북한어린이들을 입양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베이징과 평양은 탈북자들과 그들을 돕는 자들을 잡아들이는 제도를 제정했다. 가택수색이 증가했고 탈북자들의 정보를 제공하는 주민들에게는 포상이 주어졌다. 2002년 이후, 많은 탈북자들은 베이징의 대사관과 영사관에서 은신처를 찾았다.북한은 북한-중국접경의 보안에 더욱 치중했고 선교사들과 전도자들의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에게 포상을 하고 있다.
북한에서 유일하게 허용되고 있는 예배 형태는 국가의 지도자 김정일과 그의 아버지 김일성에 대한 것이다. 정부는 여전히 특히 불교와 기독교에 난색을 표한다. 그리고 모든 종교조직은 등록하고 정부에 의해 감시된다. 북한정권은 기독교도들과 선교행위에 헌신하는 모든 자들에게 극심한 박해와 폭력을 가한다. 1953년 공산주의 정부가 세력을 잡은 이후, 30만명의 기독교도들이 실종되었다. 현재 10만명의 신도들이 기아와 고문 그리고 죽음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현장에 있다.
세 개의 기독교 교회 즉, 2개의 개신교 교회와 하나의 카톨릭 교회가 평양에 세워졌다. 그러나 그곳에 사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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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종교 자유에 대하여.
포럼 18 뉴스 서비스
(Forum 18 News Service)
25 February 2004
북한 : 마지막 은둔 왕국의 미스테리
Magda Hornemann
북한에서 죄수들에 대해 화학적, 생물학적인 실험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과 북한주민들의 모든 삶이 통제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는 있지만 북한의 종교적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다.
비록 종교의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수도 평양에서 “교회를 보여주는” 것에 있어서 얼마나 진정한 종교의식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논의되고 있다.
먼지 쌓인 교회의 의자들은 그것들이 잘 사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교 사원들은 단지 문화적인 유물에 불과하다.
빈번한 탈주 사건들은 기독인들이 비밀리에 신앙을 지킴으로 형벌을 받는다는 것을 나타내기에 부모들은 그들의 신앙을 그들 자녀들에게 전수해 주기를 두려워한다.
종종 중국에서 탈북자들은 처음으로 종교적인 삶과 대면하게 된다. 보도에 의하면 북한이 탈주자들을 속여 재송환시키려고 중국에 가짜 개신교 교회들을 지어놓았고 이를 통해 중국에서 송환된 탈북자들은 그들이 주로 한국의 개신교 선교사들과 접촉을 했는지에 대해 심문을 받는다고 전했다.
그 증거로 북한의 종교 부흥은 재송환자들의 신앙 전파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정권에 대한 그들의 의심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2월 1일 영국 BBC방송은 조선 인민민주주의 공화국, 즉 북한으로 알려진 곳의 인권상황에 대해 집중적인 보도를 방영했다. 이 TV 프로그램은 전체주의 정권이 세계를 핵전쟁의 가능성으로 위협하는 동안, 모든 시민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주민들의 이의는 용납되지 않으며 국가는 독재자 김정일과 그의 아버지 (인생의) 지도자 김일성을 숭배하도록 요구한다.
출신성분으로 인해 믿을만하지 않다고 간주되거나 국가를 배반하고 도망한 자들은 잘해야 북한의 장기수들이 수감되는 악명 높은 감옥으로 보내지며, 최악의 경우에는 무참하고 비인간적인 화학, 생물학 실험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BBC가 아무리 북한의 잔혹한 상황을 보여주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모르는 채로 남아있는 이 “은둔자 왕국”의 진정한 내면이 있다.
김정일에 대한 열렬한 찬양과 미국에 대한 통렬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북한 주민들이 어느 범위까지 그들의 진실에 대해 알고 있는지 불확실하며, 그래서 북한 정권의 선전은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북한의 감옥 시설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누가 그곳에 수감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
북한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중 하나는 종교 조직의 상황과 종교인들이 그곳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정치적 시스템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그곳에 어떤 의미 있는 종교의 존재에 대해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2003년의 북한정권의 인권에 대한 비난을 다룬 보고서에서, 유엔 위임의 인권사무국은 북한의 “사상, 양심, 종교자유의 전반적이고 혹독한 통제 ”를 언급했다.
미국정부는 2003년 12월 북한에 대한 국제 종교자유 보고서에서 3년 지속적으로 “북한에는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정적으로, 아무도 북한의 종교 자유의 통탄할 만한 상황에 대해 논쟁할 수 없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그곳에 참의미의 종교 행위와 의식들이 있느냐 (없느냐)의 범주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시도와, 북한이 제출한 가장 최근의 정보에 대한 2001년의 관측보고, 북한 정부에 의해 비준된 시민과 정치권리 국제 계약기구-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ICCPR)의 요구 승인 하에서 시민과 정치권리 국제 계약기구 (ICCPR)의 조항과 함께 모니터 국가를 승인하는 유엔 인권 위원회의 자료는, 정권의 보도된 종교자유 위배에 대한 관심일 뿐 아니라, 예배 장소의 숫자와 종교 단체에 속한 주민 숫자에 대한 북한 당국의 최신 정보로부터 “요청된” 것이다.
이것은 정부의 수사기교에 모순되는 북한의 종교상황에 대한 몇 가지 주요지식에 기초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봉착한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북한을 방문했던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수도 평양과 주변지역에서 그들의 행동을 통제받았던 이후, 우리가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평양지역의 종교 상황에 대해 더욱 심도있는 관찰을 했던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평양에는 두개의 개신교 교회가 있으며 (개신교 지굴교회와 낭낭지역의 가정교회-the Protestant Chigul Church and a house church in the city’s Nangnang district) 장충에 한 개의 카톨릭 교회가 있다. 대주교 셀레스티노 미글리오르(Celestino Migliore)와 같은 종교인물이나, 바티칸의 교황비서, 그리고 빌리 그레함(Billy Graham)- 그의 부인은 1930년대에 평양의 선교사 양성학교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 같은 사람들을 포함해서 외국 공관들, 언론인들 그리고 일반 관광객들이 이 교회들을 방문했었다.
교회들을 방문하여 예배에 참석했던 외국인들은 그들이 정부에 의해 그곳에 갔는지, 참석한 북한주민들이 진정한 신자들인지 아닌지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다만 그들이 인정한 것은 설교의 내용이 정치적이라는 것이었다. 회의론자들은 북한의 교회는 주로 공식적인 선전을 위해 존재하며 북한에는 일반적으로 열리는 예배의식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비공식적으로 그 시설들을 방문했을 때 교회 의자 위에는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고 말했다.
2002년, 한 남한의 신문은 북한의 카톨릭 협회의 의장이 북한의 카톨릭 교회에는 한명의 사제도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더 많은 종교 시설들이 평양에 건설되고 있다. 2003년 6월에 새로운 성삼위일체교회를 위한 러시아정교의 헌당식이 수도 정백 지역에서 있었다. 그 교회의 건축은 2002년 여름에 시베리아를 여행했던 김정일이 승인했었다. 다음 해 2003년 6월, 평양에서의 헌당식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 정교의 대주교 Kliment of Kaluga와 Borovsk가 방문했는데 그들은 북한 러시아정교 사제들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사제직을 위한 세 명의 북한 학생들이 현재 러시아 정교의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북한에서 어떤 정교회 공동체의 종교적 삶을 평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2002년 9월,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정교의 사제는 평양의 미래 정교교회는 주로 “지역적으로 러시아 시민들에 기초하여” 사역할 것이라고 추측했으며, 그는 어떤 북한의 정교회 신자도 알지 못한다고 암시했다.
우리가 정교회 공동체에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하여, 북한에는 또 다른 종교공동체들에 관한 자료들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충분치가 않다. 2002년 7월, 북한정부는 유엔의 인권 위원회에 북한에는 800명의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있다고 말했고, 2개의 “공공 예배 센터”와 하나의 “성당”이 있다고 보고했다.
정부는 성직자들의 존재를 명시하지는 않았는데 이것은 전술한 남한기사와 일치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불분명한 점이 있다. 우리가 하나의 “성당”이 평양에 있다고 추정한다고 하더라도, “공공 예배 센터들”의 존재를 뒷받침 해주는 독립된 자료는 없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평양의 세 개의 교회들은 단지 공식적으로 인가된 북한 내 기독교적 시설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북한의 카톨릭 공동체에 대한 정보가 확실치 않다면, 개신교 공동체 관점에서 볼
때 이는 더욱 복잡해진다. 북한정부는 주장하기를, 북한에는 두 개의 교회와 500개의 “가족 예배 센터”가 있으며 20명의 목사들이 대략 12,000명의 신자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두 개의 교회는 차치하고서라도 북한 정부의 정보와 외국의 추정안 간에 거의 일치점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몇몇의 외국 관찰자들은 일반적으로 북한정부가 발표한 개신교도들의 숫자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나는 북한 내 개신교도들의 규모에 대해 다양하게 제시해왔다.
예를 들어, 2004년, US위임 국제종교자유협회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에서 모퉁이돌 사역회-Cornerstone Ministries의 Isaac (아이작) 목사는 북한에는 10만 명에 달하는 개신교도들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 정부와 일해 본 경험이 있는 한 외국인 선교사는 북한에는 500개의 “지하” 가정교회들이 있다고 주장했으나 이것이 사실이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교회들”의 평균 규모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북한 내 개신교도들의 숫자를 말할 수는 없다. 2003년 9월, 두 명의 영국 국회의원들, Baroness Cox(버로네스 콕스)와 Alton(앨튼)경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들은 안내인에게서 북한에 200개의 가정교회들이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와 같은 미스테리가 타종교 공동체에서도 나타난다. 북한의 정부가 북한에는 10,000명의 불교신자들과 60개의 불교사원들, (미국 국제 종교자유 기구에서는 최대 300개로 추정한다) 200명의 승려들이 있다고 발표했다고 하더라도, 그곳에는 진정한 불교신자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을만한 정보들은 암시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사원들은 문화적 유산의 기능 외에 어떤 기능을 한다는 증거가 없다. 외국인 방문객들은 사원에 거주하는 “승려”들은 승려보다는 사원 관리자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방문객들은 그들이 승려들에게 요구되는 독신주의의 수행과 같은 불교의 요구사항들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승려들이 진정한 승려인지를 의심했다. 우리는 더군다나 북한에 한국 토착종교 신앙인 천도교 숭배자들이 15,000명이 있다는 정부의 주장을 확신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북한 전체주의 정권은 북부 한반도에서 모든 종교의 흔적을 무력으로 근절하는데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50년 동안의 구종교인들은 죽었고 계승한 세대는 종교 신자가 되지 않았다는 북한 정부의 설명은 실제 사실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북한정부는 (아마도 외국관계 연설을 염두에 둔 공적 관계 책략으로) 다양한 종교 공동체들의 통계들을 들고서 일련의 계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러한 역사적 발견들은 외국 자료에서 입수하여 북한 종교 공동체들에 제공한 통계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주어진 高통제 속에서 심지어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조차 종교적인 선전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북한과 중국 접경지역의 외국인들은 그들의 이웃이었던 북한 주민과 50년 동안 그들이 같은 종교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이야기를 해 왔다. 비록 몇 명이 북한 정권의 탄압 하에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그들은 영양실조로 설장발육이 부진한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다. 북한정권의 압제라는 후광 속에서 김일성의 생모가 평양의 한 장로교회의 지도자였다는 것과 현재 평양에 있는 두 개신교 교회 중 하나가 그녀를 기념하기 위해 설립되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닉하게 보인다.
북한 내의 이러한 악화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개개 신도들에 대한 정부의 박해는 끊이지 않고 지속되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한 사례가 2000년도에 발생되었다. 탈북자를 인터뷰한 한 남한인은 북한과 중국 접경 지역의 한 작은 마을의 노년층의 기독교도들 -1950년 이전부터 그들의 신앙을 유지해 온- 은 그들이 배교하는 것을 거부하여 박해를 받았다고 포럼 18 (Forum 18)에 말했다. 이순옥 여사 같은 수용자들과 북한의 이전 당국자들도 종교인, 특히 기독교도에 대해 증언했다. 기독교도들은 투옥되었고 다른 수감자들보다 더 지독한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 이유로 처형당하는 수감자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었다.
이러한 단편적 정보들을 기본으로 하여, 우리는 북한 개신교 공동체의 최대 기준치 규모를 어떻게 계산할 수 있는가? 1990년대 중반 초, 북한의 기아 현상이 시작된 이후로 중국-북한의 국경을 따라 증가된 사람 대 사람 교환(people-to-people exchanges)은 이러한 현상에 기인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중국 전문가들과 인도주의자들에 의하면 경제적 원조와 정치적 자유를 찾아 중국으로 도망한 많은 탈북자들은 중국 북동부에서 개인적으로 남한 기독교 기구들과 인도주의의 도움을 제공받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상호영향의 결과로, 많은 탈북자들은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하게 되고 그들이 귀향할 때 기독교 복음도 함께 갖고 가게 된다. 모퉁이돌 사역회(Cornerstone Ministries)의 Reverend Isaac은 미국 국제종교자유 협회에서 북한의 10만 명 개신교도들 대부분이 오늘날 중국에서 간접, 혹은 직접적인 한국 기독교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종교적 신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 당국은 이러한 “영적인 오염”의 정보를 입수하여 오염 확산을 근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중국-북한 접경을 따라 감시인들과 중국의 외교관들, 그리고 그들의 수행자들을 포함해서 북한 공직자들은 중국 북동부에 10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추정되는 탈북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탈북자들을 체포하여 강제로 북한으로 재송환시킨다는 보고가 있다. 한 일본인 인권 변호사는 북한 정부가 국경접경에서 불과 20km 떨어진 양지와 질린 지방에 가짜교회로 판명된 교회건물들을 지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 공직자들이 무간섭 태도를 택하여 탈북자들이 비밀리에 교회에 참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교회와 목사에 대해 묵인하고 있다고 포럼18에서 말했다. 한 일본자료 또한 그 교회에 참석하는 많은 탈북자들이 중국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강제로 북한으로 재송환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목사는 그의 가족이 북한에 인질로 잡혀있기 때문에 비밀리에 이러한 일을 하도록 강요당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많은 탈북자들과 남한의 기독교 그룹들이 입증한 것처럼, 북한 국경 감시원들에 의해 체포된 탈북자들은 그들이 중국에 있었을 동안에 그들이 성경을 읽었는지, 그들이 교회에 참석했었는지 등 남한 선교사들과의 접촉 범주에 대해 심문 받는다. 그 질문들에 대해 확실하게 답변하는 사람들은 투옥되거나 엄중한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중국에 있는 남한 기독교인 그룹이 북한에게 은밀한 위협의 세력이 되고 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것이다. 오랫동안 북한에서 또는 북한과 중국 접경에서 인도주의 활동을 하길 원하는 남한의 기구들과 개인들은 “남한사역연합“의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그들의 이러한 활동에 대한 남한정부의 승인은 또한 이러한 맥락의 “정보”를 모으기 위한 정부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이다.
우리가 제안한 북한의 어떤 종교적 “부흥”은 최근의 현상이 외부 영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북한 주민들이 수년간 찾았던 신앙 안에서 안식을 찾았다는 것이 위법이라는 것은 정말로 아이러닉하다.
그렇다면, “국가 종교”는 종결된 것이며, 전체주의 정권치하의 국민장악은 더 이상 그렇게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 암시는 분명하다. 국가에서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그들의 구원을 찾은 북한 주민들을 볼 때 미국은 북한 정권을 갑자기 더 이상 협박의 눈길로 보지 않는다. 김정일과 그의 추종자들은 지금 이것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 http://www.forum18.org
북한의 살아있는 순교자들
Paul Sharpe
09-Jul-2003
(www.christianmonitor.org)
“중국과 북한 국경의 탈북자들은 그들이 몇 쪽의 성경을 읽고 복음과 하나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인해 투옥당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경을 읽었기 때문에 고문당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생물학적 실험에 이용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죽임을 당했다. 그곳에는 군중처형이 일어나고 있다.“- Michael Horowitz
피상적으로나마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 또는 북한에서의 기독교인이 받는 형벌과 고통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악의 왕국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받는 박해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혹독한 고통은 일상적이며 특히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세계에서 견줄 수 없는 순교와 타락의 이야기를 입증한다. 집단캠프에서의 현존하는 고문과 감금의 위협 그리고 이것들과 결속된 기아의 실체와 형용할 수 없는 공포는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한 일상적인 삶 (그리고 죽음)이다. 그러나 북한의 성자들이 당하는 극심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북한인들의 신앙수호의 증거는 지하 교회가 확산되고 많은 크리스챤들이 성장한다는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한국전쟁과 남북분단에 앞서 북한의 수도인 평양은 기독교의 주요 중심지로 알려져 있었고 친근하게는 “동쪽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렸었다. 한때 기독교 신앙으로 활력이 넘쳤던 이 나라는 종교자유의 가장 악명 높은 공격자 중 하나로 바뀌었다. 오픈 도어즈는 작년 World Watch List에서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위에 올려놓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 박해의 수준에 의한 것이다. 미국 당국은 지난 3년간 북한을 “특별한 관심의 나라”로 이름하여 ,“지독한 종교 자유 위반자”의 나라로 지정했다.
북한에서 기독교 신앙의 신앙고백은 극심한 범죄이며 만약 잡힌다면 신도들은 무자비한 형벌에 직면하게 된다. 독일의 Norbert Vollersten 박사는 이전에 북한에 대해 전례 없는 접근을 한바 있는데 그는 탈북자들이 “기독교도들이 성경을 읽었다는 이유로 고문당하고 죽임당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강제로 생물학 실험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International Christian Concern (ICC) 는 1999년 동안, 400명의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대부분은 범죄의 책임을 지고 공중화형을 당한다.” 미국은 “어떤 신자들은 죽음(처형)에 이르기까지 고문을 당한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잡힌 그리스도인들은 집단 수용소에 수용되는데 그곳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인권 위배에 의해 다스려지는 곳이다. 매년 25%에 달하는 모든 수용소의 수감자들이 기아, 비인간적 육체노동과 조건, 간수들의 무자비한 폭력, 고문과 즉결 처형 등의 조합으로 죽는다고 추정되어왔다. Alton경은 House of Lords 연설에서 이를 인정하면서 “표현할 수 없는 비인간적 취급을 그들에게 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수용소 안의 기독교도들은 ”누구보다도 가혹하게 고통 당한다“고 주장했다.” 기독교인들은 당국에게는 특별한 위협이다. 기독교인들은 명확한 햇수를 판결 받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신앙을 가지고 있는 한 수감되어 있는다“ 목격자들은 이러한 그의 진술들을 확증했다.
수용소의 생존자 이순옥은 일리노이 주 Itasca의 한미한인교회에서 수용소 기독교인들의 운명에 대해 증언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는 의지가 없는 한 “인간 이하”의 가치로 취급되며, 간수들에게 “짐승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수용소의 또 다른 생존자 강철환은 “기독교인으로서 그들은 그곳에서 살아나오지 못한다. 나는 그들이 단 한마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부인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이 자발적으로 집단 수용소라는 끔찍한 곳에 머무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고 진술했다.
이 수용소의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사례들을 읽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Vollersten 박사는 중국에서 한 탈북자와 인터뷰한 후 말했다. “수용소에서 기독교인 여인들이 아이를 낳으면 그 애들은 즉시로 죽임을 당하고 집단 수용소를 지키는 개들의 먹이로 던져진다.”
Senate judiciary committee에서 증언한 이순옥은 “대여섯 명의 노인들”의 끔찍한 죽음에 대해 진술했다. 그들이 기독교 배교를 거부하고 나자 간수들은 녹은 쇳물을 그들 위에 단숨에 부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일하는 강제 수용소는 철을 연마하는 시설이었는데 그곳에는 어느 한곳에도 환기 시설이 없었다. 그 결과적으로 그들은 육체의 성장에 있어 몸의 형태를 알 수 없고, 발육이 멎은 상태가 되었다. 이순옥에 의하면 그 사람들을 인간이라고 부르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암흑의 한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영은 움직이며, 세상의 빛이신 예수가 너무 깊어서 침투하지 못하는 어두움은 없는 법이다. 반세기에 걸쳐 극심한 역경의 한가운데에서도 살아남은 교회의 인내와 참음, 그리고 분명한 지하교회의 부활은 북한 성자들의 헌신과 인내를 보여주는 영감있고 겸허한 증언이다. Michael Weygandt는 그들의 허기와 하나님을 알기 원하며 예배하기 갈망하는 한 예증을 Voice of Martyrs (VOM)에서 제시하면서, 그의 협회는 어떻게 마가복음을 헬륨 풍선 안에 넣고 북한으로 띄어 보냈는지를 말해 주었다. 북한주민 중 이 풍선을 집어드는 사람은 처형당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Weygandt는 한 작은 소녀의 이야기를 전했다. “한 어린 소녀가 우리가 보낸 풍선 중 하나를 들고 집에 가서 그녀의 할머니에게 주었다. 할머니는 울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세계의 기독교 공동체를 의미했다. 할머니는 이 풍선을 땅에 묻고 매일 밤마다 다시 파내어 읽으며 책의 의미를 그의 가족에게 해석해 주었다.”
실제로 이 기독교인들의 정절은 북한에 교회를 재건하기 위한 열망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예랑 선교회 (Yerang Missions)의 김영식 목사는 북한 기독인들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는 과거에 어디서 모든 교회들이 파괴되었는지 잘 안다. 우리는 하나님의 승인 하에 그 교회들 하나하나를 세울 것이다. 우리는 확고하고 단호한 결정으로 기도하고 이를 준비해왔다.”
이러한 쇠약하지 않은 결단과 그들의 정절은 그들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에게로 전향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Vollersten 박사는 UPI에서 “나는 10개 집단 수용소의 이전 지휘관과 이야기해 본적이 있다. 그는 수감자들의 믿음에 매우 감명 받은 나머지 북한을 탈출하여 스스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순옥은 그녀와 함께 수용되어 있었던 한 성자의 기도의 결과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Jim Dykstra은 이순옥의 연설을 들은 후 결론지었다. “그러한 기도로 인해 이순옥은 하나님은 누구이신지, 그리고 그녀의 삶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비록 교회가 “철저하게 가계(家係)를 중심으로” 조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땅에서 봉사자들의 업적은 확실하다. 교회는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ICC는 북한에 현재 50만 명에 달하는 살아있는 기독교인들이 있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성장은 부분적으로, 북한에서 탈출한 30만 명으로 추정되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기독교의 복음의 메시지가 퍼지고 있다는데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지속되는 식량부족으로 인해 많은 북한 주민들이 중국으로 도망하고 있다. 중국 땅에서 북한 주민들은 불법탈주자들이며, 여러 경우에 인권오용의 희생물이 된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에게 이는 또한 기독교의 복음을 접할 수 있는 첫 기회가 된다.
Michael Weygandt는 한번은 중국에서 탈주자가 “집을 향해 십자가를 놓는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들은 십자가가 신뢰의 표시라는 것 외에 무엇을 상징하는지 모른다.” 김송근 같은 탈북자는 중국 접경에서 북한 사람들을 돕는 선교사들을 만남으로 크리스챤이 되었다.
토마스 화이트는 다시 송환된 북한 기독교인들로부터 “그들이 철사로 허리와 손이 묶여 있었다고 보고했으며 이 묶인 철사로 인해서 그들은 북한으로 다시 인도되었다는 보고서를 접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화이트는 ”한국인을 위한 비밀성경학교가 아직도 중국묘지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고 확언했다. 중국에서 기독교로 전향하는 몇몇은 그들 가족과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는 그들의 의지를 통한 것이다. 그 의지는 고향으로 돌아가 선교사들에게서 들은 복음의 메시지를 나누려는 것이다. 다른 몇몇은 그들의 믿음으로 중국에서 교회의 확산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비극적이게도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순교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북한의 많은 성자들은 역사의 캔버스위에서 보이지 않는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그들 이름은 그 누구에 의해서도 기억되지 않는다. 그들의 파괴된 삶은 극도의 역경의 삶이었고 그들 조상의 땅은 그들의 피, 순교자들의 피로 물들었다. 그러나 확실히 그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제단 아래의 영혼들이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으로 인해 죽임 당했고, 그들이 지녔던 증언으로 죽임당한” 그 사람들이다. 그리고 확실하게 지금도 그들은 큰 목소리로 “거룩하고 진리이신 주권자 하나님이여, 이 땅의 사람들을 심판 할 때까지, 우리의 피의 원한을 갚으실 때까지 우리가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합니까. ”라고 부르짖고 있다. (계 6:9-10)
이 글을 쓴 Paul Sharpe는Christian Monitor의 편집자이다.
(www.christianmonitor.org)- Christian Monitor 는 전세계의 박해받는 교회들의 정보를 실은 온라인 정보지이다. editor@christianmonitor.org.로 Paul Sharpe와 연락할 수 있다.
미국 위임 국제 종교자유 협회
로스앤젤리스, 캘리포니아
Isaac 목사의 증언
U.S.Commission
on 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Hearing
Los Angeles, California
Testimony of Reverend Isaac (Full name withheld)
January 27, 2003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신사 숙녀 여러분,
미국은 우리 한국이라는 나라에 종교의 자유를 격려하는 길고도 영광스런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前文 생략-
38선 반대편의 북한 1백만 인구는 고립과 억압, 전체주의의 긴 암흑의 방으로 들어섰습니다. 한때 많은 크리스챤들로 제 2의 예루살렘이라고도 불렸던 평양은 세계의 마지막 전체주의 정권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지난 50년 동안에 모든 예배장소의 파괴, 그리스도인들의 처형이 있었고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自我 의지라는 “주체사상”을 수립했습니다.
오늘날 50년 간의 세뇌교육 이후에 주체사상은 북한의 종교가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 김일성은 위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고 그의 사진을 박은 브로치는 모든 북한 주민들의 가슴을 지키고 있습니다. 혁명적인 정신인 주체 또는 自我 의존 사상은 각 북한 사람들의 길을 인도해주는 빛입니다.
북한의 한국 기독교연맹(The Korean Christian Federation -KCF)는 이전의 소련과 중국에 의한 국가종교사무소의 형태를 따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신이 없는 나라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국제 자금을 획득하려 발전된 KCF는 정부를 위해 성공적으로 천만 달러를 유치했습니다. 북한의 전시용 교회들은 단지 외국 관광객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필요할 때만 개방된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적인 것입니다. 사실 몇 년 전 우리가 그곳에서 찍었던 사진을 분석한 결과, 평양의 개신교와 카톨릭 각 교회에서 교인인 것처럼 행세했던 같은 배우를 우리는 발견해냈었습니다.
오늘날,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아직까지도 투옥되고 고문받고 죽임당하고 있는 사건들은 실제입니다. 3년 전 우리와 함께 일했던 한 북한사람이 성경을 품속에 지니고 있었던 채로 중국 국경을 넘은 직후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쇠파이프로 맞아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잡힌 후 심문 받고, 구타당한 후에 처형을 위해 경찰서에 연행되었습니다. 그는 살아남아서 오늘날에도 북한의 박해받는 교회를 장려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불과 몇 달 전에 우리가 알고있던 한 북한사람이 체포되어 북한으로 송환되었습니다. 그는 심하게 구타당한 후 투옥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주변 동료 죄수들이 한사람 한사람 그에게 동참했습니다. 36명의 사람들이 그와 함께 투옥되었는데 대다수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근절을 위해 분리된 대집단 수용소와 마찬가지로 10만 명이 넘는 크리스챤들이 있는 지하교회의 존재는 모두 공식적인 기록입니다.
김정일 정부는 이전 그의 아버지 김일성처럼 크리스챤들에 대한 극도의 재교육 또는 기독교인 뿌리 뽑기를 목표로 합니다. 북한에서 기독교 정신은 중요한 적대 사상 세력으로 떠올랐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그 분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김일성과 김정일 숭배와 인본주의적으로 자신을 의지하는 주체사상과 직접적으로 대립되는 것입니다.
비교할만한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독교인들은 북한 사회의 기초가 거짓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북한 정권을 따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북한사람들의 정신은 지속적인 국가선전기계에 의해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연령에 호전적인 메시지로 교통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왔습니다. 평양에서 북한의 투쟁 기념비를 청소함으로 그들의 충성심을 나타내듯이, 젊은 중핵들이 김정일을 찬양하는 노래를 듣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1900년대 첫 반세기 동안의 일본의 속박은 그 다음 반세기에 김일성의 속박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자유의 모델이 없이, 북한 주민들은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권위와 관습준거에 존경심을 표하는 유교적 원칙에 기초한 한국의 장구한 문화는 북한정권의 전체주의 본성과 외부 정보에 대한 통제로 인해 독특한 사고방식을 창조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주민의 세계관은 정부의 허위정보의 실체로 추정됩니다. 북한 주민들은 정부가 취하는 태도를 믿습니다. 식량의 불균등 분배는 미국과 그 꼭두각시인 남한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풀뿌리 계급에서부터 이러한 불만족이 널리 퍼지는 동안 정권의 지도자 정신과 그 사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지속되는 기근과 생존단계의 삶의 조건은 많은 북한주민들을 중국 국경을 불법으로 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요즈음 족히 40만 명의 경제 난민들이 만주(Manchuria)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에 의해 방어받지 못하는 이 탈주자들은 노동착취와 학대로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노예제, 매춘, 성적 능욕, 고문, 장기매매를 위한 살인, 스포츠 운동 또는 보상금을 위한 탈주자 포획의 많은 사례들이 지금까지 문서화 되어왔습니다. 이들은 중국에서 아무런 인권이 없습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은 산속에 구멍을 파고 짐승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유엔과 중국에게 이들의 대표자가 되기를 희망하며 그리하여 그들의 인권이 보호되고 난민이라는 그들의 지위가 인식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하나님은 그들의 울부짖음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기독교 NGO들과 함께 이 탈북자들에게 가능한 구제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문서화되지 않는 외국인을 돕는 것이 불법임에도 하나님에 대한 순종으로 그들을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구제하는 것, 안전한 집 제공, 고아원 설립, 식량을 제공하는 일들이 인도주의자들, 선교사들과 NGO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습니다. 중국-북한 접경의 희망의 센터는 중국 당국의 최근 표적이 되어왔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셀 수 없는 수색이 있었고, 센터들은 폐쇄되어 왔으며 외국 근로자들은 거대한 벌금을 할당받고 국외 추방되었고 북한 사람들은 강제적으로 북한으로 재송환되어 투옥되거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우리의 자비의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미국이 이들 사회적 약자들의 이익을 중재하여 그들의 고통이 끝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우리는 북한사람들이 그들의 형제인 남한 사람들과 문화적으로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문화차이의 정도는 이들이 남한에 들어갔을 때의 경험으로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 대략 3,000명의 사람들이 남한에 들어오도록 허가되었습니다. 남한 정부가 그들에게 집과 연금을 제공하고, 남한 사람들과 같은 언어를 구사함에도 불구하고 탈북자들은 남한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해왔습니다. 그들은 남한사회 안에서 받아들여질 만한 적합성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과 같은 발걸음으로 경쟁을 할 수 없어서 탈북자들은 노예근성의 태도로 일상에서 차별이라는 고통을 받도록 강요됩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 과거의 광범위한 군사교육으로 인해 범죄조직을 조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남한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또는 다른 서구세계로 이민가기를 꿈꿉니다. 탈북자와 경제난민들은 나라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남한에서 그들 동족들과 화합하는 데도 매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들을 준비시키는 도전과 자연스런 통합과정을 그들을 받아들이는 사회는 반드시 도입해야 하며 그것은 남한의 교회와 세계의 교회 안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종교적 자유는 북한의 저주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민주주의 선거제도를 허락할 수는 있어도 이 이상의 종교의 자유를 줄 수는 없습니다. 북한은 여전히 주민들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보의 자유를 주든지, 종교의 자유를 증가시키든지, 또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장려하는 것이든지 간에 북한 주민의 정신을 통제하는 이 죽음은 결국에는 김정일의 불안정한 정부를 지탱하는 조작된 환상이라는 결과밖에 낳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종교자유를 부여하는 단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 정치구조의 전면적 탈바꿈일 것입니다.
종교자유는 오직 민주주의 국가 안에서만 허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정권이 바뀌어서 자유주의가 될 때까지, 나는 그들이 확실한 난민 신분이 되기까지 만주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40만의 북한 사람들의 권리를 변호하기 위해 이 임무를 수행하는 영광스러운 멤버들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나는 중국과 남한 정부와 함께 여러분이 이들을 돌보기 위해 인도적인 난민센터를 건립하기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나는 교회와 남한의 종교기관들을 감화하여 그들이 북한 사람들을 책임지고 도와 남한사회의 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또한 남한 사회에 받아들여지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김정일의 전체주의 정권의 압박을 견뎌내는 위원회와 위원회 추천의 결과로 미국이 북한의 종교자유와 인권의 보호에 있어, 전세계적인 정치사회와 NGO공동체를 움직이는 공격적인 입장을 취할 것이라는 희망에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나는 이 임무에 대해 연설할 수 있었던 기회에 감사하며 여러분의 지속되는 심의에 하나님이 축복하기를 기도합니다.
- http://www.uscirf.gov/hearings/27Jan04/isaac.php3?scale=1024
북한 소년의 탈출 : 중국으로의 시련의 여정
Mark Ellis
Monday, January 19, 2004
수석 통신원,
ASSIST News Service
TUSTIN, CALIFORNIA (ANS) -- 겨울기간 동안, 북한에서 중국으로 암흑 속에서 얼어붙은 광활한 두만강을 건너는 일은 여러 면에서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디모데라고 이름하는 소년에게는 자유를 향한 동경으로 위험을 무릅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
“형제 디모데는 중국으로 가려고 강을 건너다가 붙잡혔습니다.“ 그의 친구 박영이 말했다. 박영은 자신이 석받된 뒤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들의 우정은 중국국경 근처 한 북한 감옥에서 몇 개월간 지속되었었다.” 그 친구는 북한 국경 감시자에게 지독하게 구타당했어요.“ 박영이 말했다.
구타가 있은 그 다음날 아침, 디모데 형제는 감방에서 끌려나왔다. “감시원은 나뭇가지위로 밧줄을 던지더니 그의 허리를 묶었어요. 그는 묶인 채 공중에 들려져서 정말 지독하게 맞았어요. 그 바람에 그의 한쪽 팔이 빠지고 말았어요” 박영은 설명했다. “상처는 매우 깊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다음에 그 감시원은 그를 풀어주더니 혼자 힘으로 살아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빠진 한쪽 팔을 끼우려고 의료적 도움을 찾아 강을 건넜어요.” 박영은 말했다. 중국에서 디모데는 선교사 Peter Rhee를 만나 안전한 집을 찾게 되었다. 디모데는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가 정말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시란다.” Peter Rhee는 그에게 말했다. Peter Rhee가 그와 함께 복음을 나누었을 때, 디모데는 호기심으로 그러나 희망의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비교적 안전한 국경근처 작은 집에서 디모데는 많은 눈물을 쏟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디모데의 첫 번째 반응은 이 복음을 나누어야 되겠다는 열망이었다. “그는 그의 부모와 이 복음을 나누고 그래서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해주고 싶어했어요.” 박영은 말했다. 몇 달 후 디모데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그래서 디모데는 북한으로 돌아갔고 집에까지의 먼 여정을 떠났습니다.” 박 영은 말했다. “그는 여러 달 동안 실종된 상태였어요. 그래서 그는 그의 이웃과 친구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디모데가 이 간단한 한가지의 소식을 가지고 가족에게 다가갔을 때, 그의 가족의 반응이 어떠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는 어둠이 올 때까지 기다렸고 그 후 집안으로 기어들어갔어요.” 박영은 설명했다. “처음에 그의 가족은 그가 살아 돌아온 것에 대해 매우 기뻐했어요. 하지만 디모데가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굉장히 화를 냈어요.”
“그는 예수 믿기를 당장 중단하라고 소리 질렀어요.” 박영은 말했다. “디모데는 그의 아버지에 대한 불신으로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어요. 디모데의 아버지는 화를 내며 당장 여기를 떠나거나 아니면 비밀리에 자수하라고 소리질렀어요.” 디모데는 이러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그가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그가 그의 어머니를 쳐다보았을 때 눈물이 그들의 눈에서 흘러내렸다.
그때 그는 그가 떠나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눈물의 작별인사를 하고 도망쳐야 했어요.” 박영이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그의 손을 붙잡고 나의 아들아, 네가 어디에 있든지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어요.”
디모데는 흑암 속에서 얼어붙은 두만강을 다시 한번 건넜다. 그리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벌써 그의 어머니가 그리웠고 그가 떠날 때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했다. 안전한 집으로 들어오면서 그는 다시 선교사 Rhee의 따뜻한 환영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불과 며칠 후에부터 끔찍한 생각들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그의 부모와는 나누었지만 그의 할머니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영은 회상했다. 그는 그가 돌아가지 않는 한 그의 할머니가 다시는 예수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할머니는 연로하시기 때문에 언제까지 살아계실지 알 수 없었다. 디모데는 자신만이 할머니의 운명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 Rhee에게 한 번 더 떠나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선교사 Rhee는 쌀과 설탕을 가방 안에 준비했고 그가 북한에 들어갈 수 있는 노자돈을 조금 주었습니다.” 박 영은 말했다. 디모데가 떠날 준비를 할 때 선교사는 그를 안고 말했다. “기억해라.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그것이 내가 우리 할머니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교회를 세우고 좋은 소식을 가지고 당신에게 돌아오겠습니다.” 디모데는 말했다. 그는 어깨에 식량이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문밖으로 걸어 나오면서 그의 품안으로 성경을 밀어 넣었다.
디모데는 강둑에서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어둠이 깔리기를 기다렸다. “그는 흐르는 물소리 외의 것을 들으려 노력했고 중국 순찰자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발자국 위에 나뭇잎을 덮었습니다.” 박영은 말했다. 그는 자정 후에 두만강을 건널 수 있었고 자신이 살던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인기척도 없이, 그는 갑자기 북한 순찰원들과 마주쳤다. 그는 그들이 그가 강을 건너온 것을 모르기를 바라면서 얼어붙어 섰다. “너 거기, 어디 가는거야?” 거친 목소리가 물었다. 그는 새장의 새처럼 붙잡혔다.
“거친 손들이 그를 붙잡고 주먹과 장총의 개머리판으로 그를 때렸습니다” 박영이 말했다. 처음 구타에서 살아남아 그는 지역의 감옥으로 이송되었고 그곳에서 그는 다시 맞았다. 그리고 취조실 바닥에 던져졌다. 취조가 시작되었다.
“너 중국에 있는 동안 미국사람 본적 있어?” 그들은 물었다.
“아니오.” 그는 확고하게 말했다.
“선교사는 본적 있어?” 디모데가 주님에게 대답을 구하는 사이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는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네” 디모데는 대답했다.
“너 그들의 종교를 믿느냐?” 그들은 그를 괴롭히면서 물었다.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믿는지를 묻는 것입니까?” 디모데의 단호함에 취조관의 얼굴은 흉하게 찌푸린 인상으로 변했다. 그는 쓰는 것을 중단하고 펜을 디모데에게 던졌다. 그리고 그를 치려고 덤벼들었다.
박영에 의하면, 디모데가 기억하는 마지막 한 가지는 흙투성이의 커다란 군화가 그의 얼굴로 향해 오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디모데는 어스름한 불빛의 감방 안에서 깨어났다. 그는 시멘트 바닥에서 잤었는데 그것이 갑자기 차갑고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는 배가 고팠고 몸이 아팠다. 그는 그의 입 주위가 부어오르고 비틀려진 것을 알아차렸다. 사실 그의 육체는 너무나 심하게 상처를 받아 전혀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
더러운 감방의 희미한 아침햇살 안에서 그는 선교사 Rhee가 그에게 처음 가르쳐주었던 찬양을 기억했다.
그가 있던 감방 안에는 그 말고 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디모데는 알아차렸다. 그들은 디모데가 찬양을 부를 때 함께 허밍으로 따라 불렀다. “이상한 따스함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그에게 임했어요.” 박영은 말했다. 기쁨의 눈물이 그의 뺨에 흐르기 시작했다.
“다음날 디모데는 모질게 심문 받았습니다.“ 박영은 회상했다. ”그는 그가 만났던 선교사의 이름을 대도록 구타당했습니다.“ 박에 의하면 그들은 그의 신앙을 말로 부정하면 때리는 것을 그치겠다고 말했다.
“그분이 나를 부인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가 그분을 부정하겠습니까.” 디모데는 취조관에게 말했다. 그들은 디모데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 때렸고, 그의 피로 얼룩진 콘크리트 바닥에 그를 내동댕이쳤다.
몇 시간 후에 디모데는 같은 감방에서 깨어났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디모데는 속삭였다. “그분이 나의 생명을 하루 더 남겨두셔서 나는 그분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입은 여전히 상처투성이였지만 그는 선교사에게서 배운 또 다른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매 순간 나는 그분의 사랑을 지킵니다. 매 순간마다 나는 위로부터 오는 삶을 삽니다. 영광의 빛이 비출 때까지 나는 예수를 바라봅니다. 매 순간마다 오 주여,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다른 죄수가 노래를 하기 시작했고 회색의 아침빛 안에서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할 때 눈물이 흘러내렸다.
박영은 함께 감방에 갇혀있는 동료의 강인한 신앙에 놀라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그가 미친 줄 알았어요.” 박 영은 말했다. “그는 매일 밤마다 노래를 불렀고 그것은 작고 은밀한 부흥으로 바뀌었어요.” 그는 회상했다. “매일마다 디모데는 구타당했고 그를 이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웠어요.”
“디모데는 내가 풀려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찬양하고 있었어요.” 박은 말했다. “그는 감방안의 교회였어요.“
불행하게도 박영은 그 친구의 운명에 대해, 그가 풀려 났는지, 취조관의 학대에 굴복했는지 알수 없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몰라요. 하지만 그의 힘은 암흑 속에서 우리 모두가 찬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어요.”
“복음은 이러한 탈북자들에게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Thomas Kim은 말한다. 그는 국경을 따라 디모데와 같은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룹선교사역과 연관된 일을 한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그들은 다시 귀향하여 그들이 알아낸 것을 나누고 싶어합니다.” 그는 말한다. “70%이상이 집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북한은 매우 폐쇄된 나라이기 때문에 이러한 탈북자들은 국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소수의 선교사들을 대표한다. “우리는 그들이 안전하게 성경과 교재들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김은 말한다. “그들은 북한을 내부에서부터 복음화하려는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Thomas Kim이 이끄는 그룹은 처음 그곳에 도착한 탈북자들에게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제공한 것처럼 복음을 나누어 줄 것이다. “처음 두 주간은 그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주고 믿음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Thomas Kim은 말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의 사람들은 선택이 되어 마지막 두 달동안 리더 훈련을 받게 된다. “우리는 6개월 동안 그들에게 제자훈련을 합니다. 6개월 후에 그들 중 반은 북한에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한 크리스챤은 돌아가길 원합니다.” Thomas Kim은 말한다. “국경을 넘어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할 때 그들은 국경을 넘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는 북한에서 투옥되어있다 하더라도 영적으로는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한 자유를 알고 있습니다.” Thomas Kim은 말한다.
-http://www.assistnews.net/Stories/s04010061.htm
오픈 도어즈 회장 - 북한의 고통받는 기독교인들이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Wednesday, August 13, 2003
OPEN DOORS USA
Jerry Dykstra, Media Relations
Coordinator
Phone: 616-915-4117
or 949-752-6600
E-mail: JerryD@odusa.org
For Immediate Release
즉각적인 석방을 위하여
SANTA ANA, CA (ANS) --‘우리는 항상 사담 후세인이 정말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듣습니다. 하지만 나는 김정일은 사담 후세인보다 10배는 더 악한 사람일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북한의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편에 서기 위하여 고문과 체포, 투옥, 죽음에까지 직면합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억압되고 고립된 나라입니다. 나는 북한의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이러한 잔악한 일이 일어난다는 소식에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윗글은 올해 초 한국을 방문했던 국제 오픈 도어즈의 회장 Johan Companjen의 말이다.
오픈 도어즈의 가장 최근 World Watch List에 의하면 북한이 기독교인 박해의 혹독함을 나타내는 세계국가지수에서 1위를 나타냈다. 북한에는 실질적으로 종교의 자유란 없다. 성경은 금지되었고 복음전도자는 처형을 당한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공산주의 정권이라 하더라도, 비밀리에 예배를 드리는 북한의 기독교인은 40만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픈 도어즈는 북한의 이 기독교인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Companjen은 덧붙여 말했다. “하나님은 그곳의 문들을 다시 여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전의 이유로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 기독교인들은 북한의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 박해받는 신앙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오픈 도어즈에서 거의 30년간을 일해 왔는데 우리의 고난당하는 형제자매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것 보다 믿음위에 굳건하게 서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Companjen는 말한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불꽃 속에서 사라져가는 이유이고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강하게 서있는 이유입니다.“
“나에게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은 박해받는 교회들과 일하면서 의기소침해지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은 박해받는 교회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기쁨과, 헌신, 그리고 매일 그들의 삶 앞에 내려놓는 기독인들의 결단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받지 않는 많은 나라들에서는 교회가 쇠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받는 나라에서는-중국처럼- 교회들이 성장하고 번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해받는 교회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그들의 사례를 따라야만 합니다.”
Companjen는 북한의 박해받는 자들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기도제목들을 제시했다.
⑴ 우리형제자매들이 무시무시한 반대에도 그들의 신앙을 강하게 지킬 수 있도록
⑵ 하나님께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보호해 주시도록
⑶ 성경과 교재들이 들키지 않고 그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⑷ 러시아와 동유럽의 철의 장막이 무너졌던 것처럼 종교자유와 개방이 북한에서도 일어날 수 있도록
⑸ 식량과 의약품이 기아를 수년간 견디고 있는 주민들에게 전달될 수 있도록
세계 약 20억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신앙을 가짐으로 박해를 받고 있으며 또 다른 20억에서 40억에 이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됨으로 차별대우에 직면하고 있다. 오픈 도어즈는 세계의 가장 어려운 지역의 박해받는 교회들에 훈련, 교화, 공동체의 발전과 개인장려방식으로 힘을 주고 봉사하기 위해 베스트셀러 “하나님의 밀수자들” 책의 저자인 Brother Andrew에 의해 1955년 설립되었다.
(Media Alert: For more information or to set up an interview, call Jerry Dykstra at 616-915-4117).
http://www.assistnews.net/Stories/s03080051.htm
분석: 북한에서의 순교
Uwe Siemon-Netto
UPI 종교부 편집자
5/6/2003 6:53 PM 발행
WASHINGTON, May 6 (UPI) -- (독자들은 다음의 이야기가 공격적인 생생한 언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한 기독교인의 순교는 스탈린주의 국가의 위기처럼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UPI는 화요일 보도했다. 중국 당국자들은 중국 영토 안에서 교육받으며 피난처를 찾고 있는 북한 기독교인들을 검거하여 북한으로 재송환하고 있다. 이들은 허리와 손에 철사로 묶 인 채 북한으로 다시 재송환된다.
워싱턴을 근저로 한 변호사 그룹의 International Christian Concern의 회장 Jeff King은 UPI에서 이러한 강제 재송환은 지난 몇 달 동안 중국국경지역에서 벌어지는 북한 주민들의 탈북사건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데에 기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White는 한국인들을 위한 비밀성경학교들이 아직도 중국의 무덤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발견된다고 밝혔다. “놀랍게도, 이 학교를 졸업한 일부는 다시 그들의 나라로 돌아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White와 King 그리고 UPI와 인터뷰한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강제로 돌아가던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가든지 간에 그들은 무시무시한 운명과 대면해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VOM이나 ICC같은 기독교 기구들이 몇 년간 이야기해 왔던 것이 작년 국회에서 있었던 목격자들의 증언으로 확증되었다. 수백만의 정치범들이 비공식적으로 북한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학대당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악독한 고문은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다. 한때 당의 지배층에 있었던 고급 요원 출신 이순옥은 그녀가 계촌 정치범 수용소에 있었을 동안에 배교를 거부한 대여섯 명의 늙은 기독교인들의 잔악한 처형을 보았다고 증언했다.
그들의 학살은 감옥의 또 다른 부분이었던 주철공장에서 일어났다. 기독교인들은 줄지어있었고 간수들은 그들의 신앙을 버리고 북한의 사상인 주체사상을 택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선택된 죄수들은 모두 반복되는 명령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안전관리자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그들에게 쇳물을 부어 죽였다.” 이순옥은 말했다.
그녀는 또한 수백명 수감자들의 사체들은 과수원의 비료로 쓰여진다고 말했다. 그 과수원에서는 특별하게 크고 맛있는 사과와, 배, 복숭아 자두들이 재배되며 이 과일들은 고관당원들과 정치관리인들에게 상납된다고 했다.
그동안에 수용자들은 그들 변소의 구멍을 드나드는 쥐를 잡아먹고 사는 등 굶주리고 있었다. 그녀는 특별 형벌을 받는 24인치의 넓이와 44인치의 높이의 방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곳에는 7일에서 10일간 감금되며 똑바로 서지도, 앉지도 그리고 눕지도 못하는 작은 방이었다.
이곳은 “옷에 기름자국을 남기거나, 김정일의 새해 메시지를 외우지 못하거나, 작업의 할당량을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벌을 주는 곳이었다.
“수감자들이 이 감방에서 나오면 그들의 다리는 겨울에는 동상으로 심하게 구부러져서 작업을 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많은 희생자들이 적절한 운동부족으로 영구적으로 다리를 절었으며, 석방 후 그들은 곧바로 힘든 노동을 다시 시작함으로 결국에는 죽었다.”
만약 이순옥의 연설을 읽는다면 -많은 부분이 출판되기에는 너무나 끔찍하다-미국의 대통령 Bush가 북한을 악마의 소굴이라고 평가한 것에 동의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중 가장 끔찍한 내용 중의 하나는 수감자들이 낳은 태아에 대한 살해이다.
“의료실에서 나는 6명의 임신한 여자들이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그곳에 있었을 때 3명의 여자들이 담요도 없이 시멘트바닥에 아기들을 넘겨주었다. 감옥의 의사가 임신한 여자들을 군화발로 차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나 무서웠다. 아기가 태어나면 의사는 소리쳤다. “빨리 죽여!” 산모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죄수들과 간호사들은 떨리는 손으로 아기의 목을 졸라 죽였다. 아기들은 죽으면 더러운 옷에 싸여서 양동이에 담겨져서 뒷문을 통해 버려졌다.”
이순옥은 그가 감옥에 있었을 때 두번 이러한 장면을 보았다고 했다. “아직도 나는 이 엄마들이 울고 있는 악몽을 꾼다.”
고급 공산주의 요원의 딸이자 부인이었던 이순옥은 7년 후에 석방되었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그녀는 북한의 수도 평양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조용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세상에 그녀가 본 것을 이야기하기로 결심했고 그녀는 고문, 죽음과 다시 잡힐 것에 대한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으로 도망했다.
http://www.upi.com/view.cfm?StoryID=20030506-050924-1370r
북한 :
정치범으로 간주되는 그리스도인들의 고통
Thursday, December 5, 2002
Elizabeth Kendal
ASSIST News Service (특별기고)
ASSIST News Service (ANS) - PO Box 2126, Garden Grove, CA 92842-2126 USA
E-mail: assistcomm@cs.com, Web Site: www.assistnews.net
북한 (ANS) -- 황장엽은 한때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과 그의 아들이자 계승자인 김정일의 대변인이었다. 그는 1997년 북에서 탈출한 가장 높은 계급의 고관이었고 탈북한 후 남한 지식층의 보호로 살아왔다. AFP는 황장엽의 말을 인용했다. “지금의 독재자 정권하의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아픔은 지난 36년간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 하에 있었을 때보다, 또는 한국전쟁을 거쳐 온 동안보다 더욱 극심하고 비극적인 것이다.”
Human Rights Watch (HRW)는 “보이지 않는 탈출: 중국의 북한주민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표했다. HRW의 기사는 종교의 자유나 종교적 박해를 다룬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HRW는 추측하기를, 모든 독자들은 종교 신앙이나 표현은 북한에서 심각한 정치적 범죄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HRW기사에서 특히 2부 “이주자의 이야기 : 인권 학대의 윤곽” 과 3부 “두려움-북한 형벌과 노동수용소” 이야기는 북한의 기독인들의 고통을 이해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인 것이다. 한때는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알려졌던 평양, 한때 부흥의 땅이었던 이 나라에는 10만 명의 기독교인들과 정치범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HRW의 기사는 탈주범들에서 탈출한 감시인들, 기아에 허덕였던 경제난민들에까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의 경험들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증언들을 통해 북한의 참을 수 없는 탄압과 고통, 끔찍하고 비인간적인 수용소의 조건, -여성 불법거래와 같은- 탈주의 위험, 탈주자들을 돕는 위험-감금과 같은-, 그리고 잡혀서 다시 송환되는 도망자들의 결과-투옥, 고문과 죽음-들이 드러난다. 이 기사는 또한 중국과 국제기구의 책임을 바라며 권고를 하고있다.
탈북자 이순옥이 2002년 1월 24일, 유엔 위임 국제종교자유협회에서 증언했을 때, 기독교인들이 “정치적 범죄자들”처럼 취급된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이순옥은 말하기를 6,000명이 수용된 수용소캠프가 100여개가 있으며 기독교인들도 그곳에 있었다고 했다. 감시원들은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이 기독교를 배교하고 하나님 예배를 거부하기만 하면 그리고 대신에 막시즘 정권의 이전 설립자인 김일성을 숭배하면 그들을 살려주고 자유를 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또한 기독교인들은 특별하게 분류되어 가장 혹독한 취급을 받았으며 가장 거친 형벌을 받았다고 했다. 예수에게로 이순옥을 이끈 것은 가장 최악의 고통의 한가운데에서 나타난 북한의 기독교인 죄수들의 사랑, 은혜 그리고 견고한 믿음이었다.
HRW기사에서 발췌한 몇가지 기사들
전직 간수의 증언
From the testimony of a former prison guard
“그들은 재송환된 사람들이 남한과 어떤 관계를 가졌었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만약 그가 남한 사람을 만났거나 남한에 대해 글을 썼거나, 교회에 참석했거나 북한에서 범죄한 뒤 도망쳤다면 그들은 신도 모르게 비밀리에 죽었다”
한 탈북자의 증언
From the testimony of a refugee
우리-HRW가 그에게 -중국 또는 한국에 대해- 방송에서 무엇이든 배운 것이 있냐고 물으면 그는 외국방송 본 것을 부인했다.“ 심지어 중국tv를 보다가 들키면 벌을 받는다. 만약 누가 남한방송을 듣고 있는 것을 알면 그는 정치수용소에 가거나 사형을 당한다.” 그는 그러한 강제집행이 그의 구역 안의 노동자들에게 일어난다고 회상했다.
정치범 수용소의 전직 간수의 증언
From the testimony of a former prison guard in a political prison
“기본적인 식사는 간장, 기름조금, 옥수수, 약간의 소금물, 그리고 아마도 조금의 김치였을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격리되었고, 가끔 300명에서 400명의 사람들이 한 방에 수용되어 다리도 펴지 못한 채 잠을 잡니다. 탈주를 시도했던 사람들은 분리된 장소에서 처형됩니다. 그들은 보통 하루 종일 벽에 목매달린 채로 방치 됩니다. 가끔 그들은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3일에서 7일을 매달려 있습니다.”
정치범이라면 그는 National Security Office의 감옥으로 보내지며 들어간 직후 그곳에서는 그의 손을 부러뜨립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심문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동안 그들은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나는 이러한 잔악한 일들을 아주 자주 보았습니다.
전직 죄수의 증언
From the testimony of a former prisoner
“그곳에서 아직도 그들이 인간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야만인의 삶입니다. 나는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생생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가족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100명의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구타당했습니다. 경찰이 우리를 때릴 사람들을 데려왔습니다. 새로 온 사람들은 이런 방식으로 정신적으로 먼저 파괴되어야 합니다. 마을의 관청에는 전문적인 구타수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규칙을 어긴 사람들을 그곳으로 데려와 때립니다. 직원들이 너무나 지독하게 때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장애자가 되거나 다리가 마비되거나 죽습니다.
이러한 장소에서 여성에게는 전혀 인권이란 것은 없습니다. 남한에서 성희롱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기술하기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노출됩니다. 성을 공공연하게 말할 것은 없습니다. 남자가 기혼자이면 차라리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들은 그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이전에 투옥되었던 한 전직관리의 증언
From the testimony of a former imprisoned official
“경제와 정치범죄들의 책임을 지는 606개의 수용소가 관리자들에게 지정됩니다. 그곳의 상태는 너무나 난폭하여 수용자들은 마치 정치범들을 다루듯 하고 어떤 방문객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으스스한 진술을 했다.
“내가 그곳에 머무를 때 1,200명의 사람들이 기지에 보내졌고 나는 단지 7명의 사람들만이 신체적 상처나 해가 없이 남았던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었고 그 외 다른 사람들은 총살당했습니다. 이 기지는 일반적으로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는 사람들만을 풀어줍니다. 많은 구류자들이 폐결핵이나 다른 질병들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캠프에는 약 300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각 방에는 30명의 인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매월마다 약 100명의 사람들이 보내지고 약 10명의 사람들이 매일 죽습니다. 하루에 한 끼를 배급받지 못하면 그는 허기로 너무나 쇠약해져서 잘 움직일수가 없습니다. 거기는 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시체를 판자에 올려놓고 옮긴 후 언덕으로 올라가 파묻습니다
나는 그 상황을 적절하게 묘사할 수 없습니다. 죽기를 기다리는 사람을 상상해 본적이 있습니까? 사람이 죽으면 시체의 옷을 벗겨서 입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비가 오는 날이면 지붕이 새기 때문에 바닥은 항상 젖어 있습니다. 시체들의 전신에는 이가 득실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용자들은 그들이 죽자마자 죽은 자들의 담요를 사용합니다.”
중국에서 탈북한 뒤 크리스챤이 된 여인의 증언,
그녀는 그 후 그녀의 딸을 찾아 데려나오려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HRW 에 의하면 그녀는 “그녀가 괴로운 체험을 할 때마다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고 했다
“나는 북한을 떠난 후 중국에서 사는 것은 모든 발자국 하나하나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호텔에서 지내는 동안, 그리고 교회의 도움을 받는 동안, 몇 번이나 거의 잡힐 뻔했다. 비록 오랜 기간이 아니었지만, 나는 중국에서의 생활 이후, 하나님 또는 어떤 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한 믿음이 없이 나는 북한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내가 두만강을 건널 때 물이 나의 목에까지 차올라 왔다. 나는 수영을 잘하지 못했고 나는 두려웠다. 물은 검게 흐르고 있었다. 신비하게도 누군가가 내 앞에서 올라와 내가 강을 건너도록 도와주었다.
-http://www.assistnews.net/ansarticle.asp?URL=Stories/s02120024.htm
말할 수 없이 참혹한 북한의 인권 실태
(LA 타임스)
이름: 남신우 등록일 2004-01-30 오전 12:16:33
말할 수 없이 참혹한 북한의 인권 실태
(LA 타임스 지, 2004년 1월 28일, 코니 강 기자)
김정일의 죄악은 사담의 죄악보다 더 지독하다고, 미주 L.A. 에서 열린 청문회에 참석한 한 증인이 말했음.
1월 27일(화), 국제 종교자유를 위한 美위원회의 공청회에 참석한 증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은 현재 지구상에서 제일 악독한 인권 유린자라고 증언했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인권실태를 감시하기 위하여 연방 기구로 만들어진 이 위원회는UCLA 법대에서 로스 앤젤리스의 첫 번째 회의를 갖었는데, 많은 한국계 미국인들이 이 공청회에 참관했고, 회의 주제는 “북한: 인권의 사각지대, North Korea: Human Rights Ground Zero” 였다.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디펜스 포럼 파운데이션의 수잰 숄티 대표는, “김정일의 죄악은 사담 후세인의 죄악보다 훨씬 더 지독하다고 증언했으며, 김정일은 후세인보다 더 많은 자국민들을 살육했고, 일본인과 남한 국민들의 납치에 직접 관여했고, 불법 마약과 위조지폐를 국제적으로 밀매했으며, 대량 살상무기를 확산시킨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마이클 영 위원장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한 공청회를 앞으로도 계속 열고 싶다고 말하면서, 북한의 인권, 신앙-思考-양심-신념적 자유 문제의 실태를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조지 워싱턴 대학교의 법대 학장인 마이클 영 교수는, “북한 주민들은 지난 50년간,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으로 실패한 국가정책과 인권유린으로 지독한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고 말했다.
“북한의 참상이 얼마나 지독한가 예를 들자면, 북한에서 軍에 징집되는 청년의 신장 기준을, 인구 전체가 발육부진에 걸려있기 때문에, 최근 4피트 11인치(1미터 50센티)에서 4피트 2인치(1미터 28센티)로 줄였다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1998년 국제 종교자유법에 의해서, 전 세계 각국의 종교자유 실태를 감독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단체로서, 위원회는 대통령, 연방국회, 국무부의 자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북한에서 출생한 한 기독교 목사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이날 간막이 뒤에서 증언했다. 이 목사는 중국과 남한에서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공청회 패널 위원들에게, 중국 동북부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는 4십만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하여 그들의 인권을 찾아주어야 한다고 탄원했다.
전에는 북한에 들어가서 성경을 돌렸다는, 이삭(Issac)이란 이름의 이 목사는, “여러분들이 중국과 남한 정부와 협력하여 탈북자들에게 인간적으로 살 수있는 수용소를 마련해주시기를 탄원한다”고 말했다.
이삭 목사는 자신의 목회에서 일하던 한 북한주민은 성경을 소지하고 북한에 들어갔다가 잡혀서, 철봉으로 두들겨 맞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증언했다.
이삭 목사는 또한, 북한 당국에서 교회를 허용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증언했다.
최근 “숨켜진 굴라그: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진상”이란 보고서를 출판한, 미국 북한인권 위원회의 선임 연구원인 데이비드 호크 씨도 이 날 증언을 했다.
호크 씨는 12명도 넘는 탈북자들로부터 들은 증언에 따르면, 북한으로 강제송환된 탈북자들중, 중국에서 남한의 기독교인들을 만났거나, 예배에 참석했던 탈북자는, 처형 당하거나, 아니면 종신형을 받던지, 북한의 굴라그, 정치범 수용소에서 장기 강제노동 형벌을 받는다고 증언했다.
수잰 숄티 대표는, 미국 정부는 대북정책에서 북한의 핵무기만 따질 것이 아니라, 북한의 인권문제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를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는 북한 정권은 자국민까지도 공포 속에서 떨게하고 있다”고 숄티 여사는 주장했다.
“인권과 핵확산은 본질적으로 연관된 문제이다. 그런데 우리는 핵문제에만 집착한다. 그렇다면, 38선 이북에서 사는 북한주민들은 우리들과 같은 인권이 없어도 상관 없다는 말인가!”
오늘 위원회 인사들은 남한의 종교 지도자 24명을 따로 만나서 서로의 임무를 논의하고,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LOS ANGELES
North Korean Record on Rights Decried
Witnesses tell U.S. panel meeting in L.A. of abuses under Kim Jong-Il. ‘His crimes are far worse’ than those of Hussein, says one.
By K. Connie Kang
Times Staff Writer
January 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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